대박기술이 개발한 슬레이트 지붕 해체작업대 ‘슬레이터’. 슬레이터를 이용하면 기존 방식보다 안전성을 더 높이고 비용은 3분의 1로 낮출 수 있다. /사진제공=대박기술
정원훈 사장이 석면슬레이트 지붕 철거 장비인 ‘슬레이터’를 가리키고 있다./수원=임진혁기자
정원훈 대박기술 사장/수원=임진혁기자
“13억 원짜리 공사 수주해서 좋아했는데, 뜯어보니 40억원도 더 들겠더라고요…. 회사가 망하겠다는 절박함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지난 11일 경기도 수원시 본사에서 만난 정원훈(49·사진) 대박기술 사장은 본인이 개발한 석면 슬레이트 지붕 해체 작업 차량 ‘슬레이터’를 ‘탕탕’ 두드리며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굴착기 운전을 배워 1998년 조그만 철거회사를 연 정 사장은 2009년 전북의 한 지방자치단체가 낸 철거 공고를 보고 입찰에 참여했다. 공공 발주 시장에 진입해 회사를 본격적으로 키워볼 생각이었다.
결과는 낙찰.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차근차근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실제 비용이 입찰가격의 3배에 달했다.
“어쩐지 쉽게 된다 했어요. 멋모르고 덤볐다가 된통 당한 거죠.”
이번 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건물 200여 채의 슬레이트 지붕을 해체하는 것. 30년이 넘은 석면에서는 폐암을 유발하는 먼지가 날린다.
‘소리 없는 살인자(silent killer)’로 불리는 석면은 슬레이트 등의 건축자재, 방화재·내화재·보온재·단열재·전기절연재·전해막용재, 브레이크라이닝 용재 등으로 넓게 쓰인다. 공기 중에 누출되면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세한 석면섬유가 폐 내에 축적될 경우 만성 기관지염과 석면폐증(폐 섬유화)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폐암까지 부른다. 이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석면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국내에서는 2008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석면 함유제품의 제조, 수입, 사용 등을 금지한 뒤 2009년부터 석면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높이 2m가 넘는 석면 지붕을 철거하려면 집주변을 쇠파이프로 엮은 비계로 둘러싸고 방호복을 입은 작업자가 물을 뿌려가며 조심스레 지붕을 한 장씩 떼어내야 했다. 규정대로 한 동을 철거해보니 꼬박 닷새가 걸렸다. 500만원이 들었다. 정 사장은 “주어진 예산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돼 이 김에 새 장비를 만들기로 결심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15톤 트럭에 크레인을 얹고, 바구니를 뒤집은 모양의 작업대를 달아 작업자가 그 안에 탄 채로 석면 지붕을 제거하는 방안을 떠올렸다. 시제품이 나오고, 실전에 투입해보니 성과는 놀라웠다. 한 동을 철거하는 데 채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비용을 3분의 1로 줄인 것.
특히 기존 방식보다 먼지도 덜 날리고 작업자가 지붕에서 떨어져 다칠 염려도 없었다. 그 뒤 지금까지 작업 효율을 높이고 안전성을 강화하는 수십 차례의 개량 끝에 특허와 안전인증까지 모두 획득한 지금의 슬레이터가 탄생했다. 최근에는 좁은 농로를 쉽게 다닐 수 있는 1톤 트럭용 작업대도 개발했다.
그의 다음 목표는 건설 신기술 지정. 정 사장은 “이르면 내년 2월 건설 신기술이 지정되면 전국적으로 슬레이터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며 “장비 임대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한 금융사는 대박기술이 신기술 지정을 받을 경우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석면 지붕 철거비용은 미국의 10%도 안 되는 수준으로 책정돼 실질적으로 규정을 지키며 작업하기 어렵다”며 “슬레이터를 활용하면 훨씬 신속하고 안전하게, 경제적으로 석면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원=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