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단톡방 세탁’

2013년 직장인 박모씨는 커뮤니티 모임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던 남성 4명과 단톡방을 개설했다. 그는 같은 모임에 나오던 특정 여성회원을 비하하는 글을 올린 게 문제가 돼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씨는 “4명만을 상대로 대화를 한 것이고 대화 내용을 서로 비밀로 하기로 했기 때문에 퍼질 것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은 박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로 친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대화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지 않을 것이라고 볼 만한 관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박씨는 항소했지만 결국 법원은 벌금형을 선고했다. 박씨처럼 단톡방에서 성적인 농담을 하다가 적발돼 처벌받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대학가에서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단톡방은 3인 이상이 이야기를 나누는 채팅방이다. 말 그대로 ‘톡(talk·대화)’하는 방. 개설 목적 등에 따라 형태·이름도 각양각색이다. 다양한 종류만큼이나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어두운 구석도 만만치 않다. 단톡방 초대를 이용한 왕따 사건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욕설이나 성희롱이 난무하기도 한다. 이는 단톡방을 단지 개인적이고 은밀한 공간으로 착각해 벌어진 일이다.

최근에는 퇴근 후에 단톡방을 통한 업무 지시를 방지하는 ‘카톡 금지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법원의 잣대도 엄격해지는 추세다. 단체 대화방을 사적인 공간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대화 내용이 얼마든지 유출될 수 있어 그렇게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사법당국이 모욕·명예훼손죄를 적극적으로 적용하자 ‘단톡방 세탁’이 대학생·직장인 사이에 유행이라는 소식이다.

자신이 쓴 글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단톡방의 대화 내용을 지우거나 아예 기존 방을 폐쇄하고 새로 만든다는 것이다. 한 단톡방 가입자들은 글을 삭제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인증 사진을 찍어 공유했다고 한다. 이렇게 세탁하면 일순간 깨끗해졌다는 느낌은 들지 싶다. 그런다고 마음속의 얼룩까지 지워질까.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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