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앞줄 가운데)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4일 전략군사령부를 시찰한 자리에서 미사일 타격 방안에 대해 설명을 들은 뒤 병사들과 같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괌 포위사격’ 위협으로 한반도를 극도의 긴장상태로 몰고 간 북한이 공을 미국에 넘기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북미 간 긴장 완화를 위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직접 메시지를 던졌다. 나아가 미국에 “먼저 올바른 선택과 행동을 보여달라”며 미국의 대응에 따라 북한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문재인 대통령도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전쟁만은 막겠다”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다”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외교적·평화적 해법을 강조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북한과 미국 고위관료들이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어 한반도 위기 국면이 다소 진정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다. 북한은 ‘중대결단’ ‘발사태세’라는 표현을 쓰며 괌 포위사격 위협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이 괌 공격을 예고했을 당시 도발 시기로 예상됐던 한미 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계기로 추가 위협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정은, “미국 행태 좀 더 지켜볼 것”=북한이 15일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미국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보자”는 김정은의 메시지를 내놓았다. 이는 북한이 더는 상황을 악화시킬 수 없다고 판단해 한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나날이 위협 수위를 높인 북한은 최근 닷새간 미국을 자극할 만한 표현을 자제해왔다. 또 김정은이 잠행을 멈추고 보름 만에 모습을 드러내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를 극대화했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까지 끌고 갔던 북한이 갑작스레 유화 제스처를 보인 데는 미국과의 단계적 협상을 고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군사적 옵션’ 검토를 언급해 극적인 협상은 어렵다고 보고 전략을 바꾼 것이다. 일단 미국에 공을 넘겨 향후 대응을 지켜보면서 요구사항을 하나씩 던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우선 미국의 전략폭격기나 핵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의 전개 중단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은은 “조선반도 지역에서 정세를 완화시키고 위험한 군사적 충돌을 막자면 우리 주변에 수많은 ‘핵전략장비들’을 끌어다놓고 불집을 일으킨 미국이 먼저 올바른 선택을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대북 압박이 한몫했다고 관측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석탄 등 일부 북한산 제품 수입 전면금지 조치를 내린 지 몇 시간 만에 김정은의 메시지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北 도발 불씨 여전히 남아=한반도 안보가 일단 한숨을 돌린 상황이지만 북한이 도발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북미 군사충돌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14일(현지시간) 북한의 괌 포위사격 엄포와 관련해 “만약 북한이 미국을 향해 발사한다면 그것은 전쟁”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북한이 괌 포위사격을 단행한다면 한반도가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강력한 경고를 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이어 “북한이 괌에 미사일을 발사하면 (미국은) 곧바로 포착할 수 있으며 미사일이 어디에 떨어지는지도 안다”면서 “북한 미사일이 괌을 타격하는 것으로 평가되면 우리는 그것을 요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는 21일 을지훈련이 한반도 위기상황에 있어 또 한 번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 관영매체들은 15일 UFG 연습 중단을 촉구하고 나서는 한편 정세 안정을 위한 한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나섰다. 환구시보는 이날 사설에서 “한미 을지훈련은 북한을 전보다 더 강력히 자극할 것이 분명하며 북한은 이에 더 강력한 대응을 할 수 있다”면서 “한국이 한반도 전쟁을 반대한다면 이번 한미 군사훈련 무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한반도에서 남북전쟁보다는 북미전쟁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면서 “한국이 북미 간 중재자 역할을 맡아 북미 충돌을 억제해야 한다. 이 역할은 한국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류호기자 rh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