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의정서' 발효 첫 날] 거액 로열티 뻔한데…가이드라인도 없어

모호한 법률 탓에 우왕좌왕
제약·화장품기업 파악도 안돼
바이오 해적국 불명예 우려도

“발효됐다고는 하지만 뭘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네요.” “일이 터져야 움직이지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17일 생물자원 보호와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한 나고야의정서가 국내에서 발효됐지만 이제야 실무적 가이드라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해외 생물자원을 이용해 의약품·식품·화장품 등을 개발·생산하는 국내 관련 기업들은 당사국의 허가를 받고 이익을 나눠야 하는 등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지만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도 미진하다. 특히 국내 기업들의 최대 자원 제공국인 중국이 이르면 올 하반기 최대 10%까지 로열티를 요구하는 내용의 자국법을 시행할 가능성도 열려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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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놓은 기업들 “손해 얼마 날지도 파악 못해”=나고야의정서는 생물자원 보호와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해 유전자원을 이용하는 곳에서 자원을 제공하는 나라에 비용을 내도록 하는 국제협약이다. 한국은 98번째 당사국이 되면서 해외에서 원료를 수입하거나 전통지식 등을 이용할 때 추가로 로열티를 부담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생산·판매 중인 의약품·화장품 등이 해외식물 종(種) 등을 주원료로 쓴다면 생산원가가 올라가는 셈이다. 그냥 쓰다가는 ‘바이오 해적’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게 된다.


그러나 업계 반응은 시큰둥하다.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라는 반응이 대다수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나고야의정서로 얼마나 손해가 날지조차 제대로 추산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일단은 참고할 만한 사례가 나온 후에야 겨우 대응팀이 꾸려지고 방안을 마련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화장품 업계도 아모레퍼시픽 등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한화장품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6년 국내 화장품 원료의 64%는 해외에서 들여왔다. 수많은 분쟁이 예고되지만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업계의 고민은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2014년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된 때부터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있었지만 기업들의 호응과 위기의식이 너무 낮아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모호한 법률에 대응책 마련 불가능” VS “미국·유럽 등은 대비책 갖춰”=이런 상황에 대해 산업계는 “관심 부족이라기보다는 모호한 법률 탓”이라고 반론하고 있다. 실제 나고야의정서는 수많은 국가가 당사자로 참여하기에 서로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기본으로 한다. 해외 자원 이용은 해당국의 법률을 근거로 하며 각국의 법이 규정하는 이익 공유율 등은 모두 제각각이다. 생물자원이나 지식의 원산지를 어디로 할 것이냐도 분쟁의 소지가 많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를 들어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함께 자라는 식물들이 있는데 이들의 원산지를 어디로 할 것이냐, 동의보감에 기재된 약초의 사용법 등과 관련된 지식은 어디가 뿌리이냐처럼 살펴보고 논의해야 할 지점이 너무 많다”며 “결국 특정 케이스가 나오지 않는 한 일반 기업에서는 자체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똑같이 모호한 법률을 두고도 미국·유럽 등 제약·화장품 선진국의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등 나고야의정서와 관련된 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일례로 유럽의 경우 유럽화장품협회인 ‘코스메틱유럽’을 비롯한 4개 단체가 공동으로 화장품 분야에서의 생물자원 이용과 공유에 관한 모범사례를 발굴하고 계약 절차에 관한 모델을 구축, 2016년 2월 유럽 위원회에 제출한 바 있다. 미국의 경우 나고야의정서를 비준한 당사국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화장품협회 등에서 나고야의정서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자체적으로 작성, 회원사에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산업정책 유닛장은 “유럽의 경우 나고야의정서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제약·바이오·화장품 등 산업 분야별로 가이드라인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다”며 “우리도 효율적인 대응을 위해 구체적인 지침을 만들어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국내 시행령은 내년부터… 중국 동향에 관심 가져야=다행히 준비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17일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됨에 따라 이날부터 국내 법인 ‘유전자원의 접근·이용 및 이익 공유에 관한 법률’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시행령 제정안도 시행됐지만 기업 등이 이행해야 할 의무사항은 지금부터 1년간 유예돼 내년 8월17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제정안은 국내 유전자원에 접근하는 개인·기업이 대상 자원의 명칭과 접근 목적, 용도 등을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국내 기업·개인이 해외 유전자원에 대한 절차를 지켰는지도 신고해야 하고 외국인이 국내 자원을 이용할 경우 소관 국가 책임 기관장에 동일한 신고를 제출해야 한다.

국내 제약·화장품 산업계의 최대 자원 제공국인 중국의 자국법도 아직 시행되지 않았다. 특히 중국의 관련 법은 타국과 비교해도 상당히 강력해 시행될 경우 우리 기업에 미칠 영향이 상당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입법 예고 등에 따르면 해외 기업 등이 중국의 생물자원을 이용할 경우 이익 발생금의 0.5~10%를 로열티로 내야하고 절차 위반 시 5만~20만위안의 벌금이 부과된다. 생물자원 이용 시 중국 기업과 합작해야 하고 실질적 연구개발 활동에 중국 직원이 참여하는 내용도 담겼다. 화장품협회 관계자는 “입법 내용이 너무 강력해 다소 조정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시행될 가능성도 높다”며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업·정부 모두의 높은 관심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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