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보험료를 감당하기 어려워 보험을 깨려던 이씨는 “지금 해지하면 해지환급금을 900원밖에 못 받는다”는 보험사의 설명을 듣고 황당해졌다. 이씨가 ‘저축성 연금보험’인 줄 알고 가입했던 것이 사실은 ‘보장성 종신보험’이라서 해지환급금이 거의 없다는 얘기였다. 알고 보니 ‘진짜’ 연금보험보다 나중에 받게 되는 연금수령액도 훨씬 적었다. 이미 120만원 가까이 납입했지만 전화통화로 가입하면서 계약서도 받지 못했던 이씨는 보험사의 책임을 입증할 길이 없어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진영씨는 전형적인 보험사 ‘불완전판매’의 피해자입니다. 지난해 1~9월 동안 금융감독원에 들어온 종신보험 관련 민원 4,265건 중 절반 이상(53.3%)은 진영씨처럼 “연금보험인 줄 알고 가입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민원이 폭증하자 감독당국도 지난해부터 감시망과 제재를 더 강화하고는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18일 생명보험협회 민원 공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4분기에도 ‘보험사의 불완전판매에 당했다’는 소비자 민원은 회사별로 전 분기보다 최대 40%까지 늘어났습니다.
불완전판매란 금융회사들이 고객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상품에 대한 기본 내용이나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무조건 팔고 보는’ 관행을 뜻합니다. 물론 불법입니다. 금융당국에 적발되면 최대 1억원까지 과태료를 물게 되지만, 이 같은 보험사들의 불법 영업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처럼 불법적으로 보험을 팔다가 과태료를 받은 사례는 매년 늘고 있습니다. 2015년에는 전체의 35%, 2016년에는 38%로 증가세가 이어지다가 올해는 45%로 훌쩍 뛰었습니다.
◇과태료 ‘철퇴’에도 계속되는 보험 불법영업
금융당국의 제재 강화에도 보험사의 불법영업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더 많은 판매수당을 받고 이른바 ‘보험왕’이 되려는 일부 보험설계사들의 욕심도 물론 있습니다. 진영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종신보험을 연금보험으로 속이고 팔면 훨씬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설계사에게 돌아가는 수수료를 포함해 종신보험의 사업비는 보험료의 25~30%에 달합니다. 보험료의 10~12%에 불과한 연금보험 사업비의 3배 수준입니다. 그만큼 설계사에게 돌아가는 수당도 더 많아집니다.
하지만 이처럼 보험사의 불법영업이 판치는 것을 개인의 욕심이나 일탈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보험업의 영업환경이 변하면서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업 국제 회계기준이 종신보험 같은 보장성 보험을 많이 팔아야 유리하게 바뀌는 것도 보험사들에게는 딜레마입니다. 오는 2021년부터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이 시행되면 보험사들은 저축성 상품보다 보장성 상품을 많이 팔아야 보험부채 시가평가에 유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IFRS17 도입을 앞두고 보장성 보험을 꾸준히 늘릴 수밖에 없다”면서 “보장성 보험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 ‘연금 받는 종신보험’처럼 이런저런 기능을 추가하다 보니 불완전판매에 대한 민원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팍팍해진 살림살이…보험 깨는 사람들
보험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사람들은 원금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보험을 깨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해 1~9월 중 보험계약 중도해지로 소비자가 원금손실을 본 금액(총 납입 보험료에서 해지환급금을 뺀 금액)은 총 3조2,472억원이었습니다. 연간으로 따지면 4조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법영업 관행을 바로잡으려면 무엇보다 보험사의 자율적인 시정 노력이 중요하다는 지적입니다. 금융위가 이번 보험사 제재 강화 조치를 내놓으면서 보험사가 위반 행위를 자진 신고하거나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인정되면 과징금 감경 비율을 기존 20%에서 각각 30%, 50%로 올릴 수 있도록 한 것도 이러한 취지입니다. 금감원 보험소비자보호실 관계자는 “불완전판매 등 불법영업의 소지가 있는 보험설계사들은 회사 입장에서는 회사에 크게 기여하는 직원이다 보니 내부통제가 약할 수 있다는 딜레마가 있다”면서 “금융당국도 점검과 제재를 강화하겠지만 무엇보다 회사가 자체적으로 통제하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