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주한미군 철수론

1976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나선 지미 카터 민주당 후보는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건다. 그리고 취임 즉시 주한미군 철수계획을 발표했다. 1978년 6,000명을 시작으로 1982년 7월까지 3단계로 지상군을 완전히 철수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첫해 계획은 3,400명으로 수정됐으나 철군 작업은 계속 진행됐다. 하지만 1979년 카터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후 완전 백지화된다. 한국의 완강한 반발과 미 의회와 국방부의 제동 때문이다.


주한미군 철수계획은 카터 때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리처드 닉슨이 추진해오다 제럴드 포드가 잠정 중단한 것을 카터가 다시 꺼낸 것이다. 닉슨은 1967년 10월 ‘베트남 이후의 아시아’라는 논문을 ‘포린 어페어’에 발표하며 베트남 등에서 미군은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대통령 취임 후인 1970년 2월 미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에 토대가 된 ‘닉슨 독트린’을 발표한다. 미국의 군사·정치 불개입과 상호조약을 맺은 국가도 핵을 제외한 분야는 자력 방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닉슨 행정부는 그해 7월 주한미군 7사단을 철수한다고 한국에 일방적으로 통고한다. 당장 박정희 정부는 일방적 철수와 감축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위반이라고 강력히 반발한다. 한국군의 전투력 증강과 장비 현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한미는 1971년 2월 회담을 열어 미 7사단 철수와 2사단 후방 배치, 한국군의 휴전선 전담, 군사 원조와 무기 현대화 지원 등에 합의한다. 이 공동성명으로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가 개최되고 있고 국방과학연구소가 창설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다시 주한미군 철수론이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동결하는 대가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내용의 협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평가와 함께 행정부 내에서도 배넌의 ‘가벼운 입’을 책망하는 소리가 나왔다. 결국 배넌은 지난주 말 전격 경질됐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찜찜한 것은 47년 전과 마찬가지로 한낱 거래(딜) 대상으로 주한미군 철수론이 나왔다는 점이다. /온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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