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파동의 영향으로 국민들이 계란이 들어갈 수도 있는 빵을 외면하면서 20일 서울의 한 제과점 판매 코너가 텅 비어 있다. /권욱기자
“이날부터 (적합 판정을 받은) 농장에서 출하되는 모든 계란은 안전성이 확인된 것으로 문제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지난 18일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살충제 계란’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국민들에게 전한 당부의 말이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벌어진 정부의 부실조사와 부처 간 엇박자 대응으로 소비자들의 불신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식품안전 분야 전문가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전문가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매뉴얼로 농가들을 관리해온데다 친환경인증제도 등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는 증거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포함해 ‘살충제 계란’ 사태가 조기에 수습되지 않는 네 가지 요인을 짚어본다.
①전문가도 이해 못할 매뉴얼=산란계 농가들이 농약잔류허용기준을 확인하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공하는 ‘식품공전’을 참고하면 된다. 문제는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는 점이다. 식품공전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500여개 농약에 대한 잔류허용기준이 나오는데 사전식으로 나열돼 있을 뿐이다. 산란계 농가가 어떤 농약을 써도 되는지, 얼마만큼 써도 되는지 등의 자세한 설명은 없다. 문제의 농약인 ‘피프로닐’을 찾아도 감귤 등 5개 식품에 대한 농약잔류허용기준만 나와 있다. 식약처가 국내 기준을 설정하지 못한 농약은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코덱스) 기준을 준용하게 돼 있는데 영어로 된 홈페이지가 링크돼 있을 뿐 농가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곽노성 전 식품안전정보원장은 “규제의 양이 방대하고 내용도 꼬여 있어 전문가들조차 이해하기가 어렵다”며 “이런 매뉴얼로는 농가들이 일일이 찾아 현장에 적용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지적했다.
②부실대응, 엉터리 통계=농식품부와 식약처는 이번 전수조사 과정에서 부실대응과 엉터리 통계 제공 등 아마추어적인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로 인해 선량한 농가들이 피해를 보는 한편 계란 난각코드도 실시간으로 정정하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이에 더해 농식품부가 과거에 발표했던 계란 안전성 검사 통계도 오류투성이였다. 2015년 말 발표한 ‘생산단계 축산물 안전성 검사 결과·계획’에서 식용란 모니터링 검사 결과를 보면 농약 등 잔류물질 위반사항이 발견된 비율은 2013년 0.09%, 2014년 0.22%, 2015년 0.23%로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듬해 발표한 검사 결과에는 위반율을 2013년 0.06%, 2014년 0.15%, 2015년 0.15%로 적시했다. 같은 연도의 같은 조사항목임에도 위반율이 대폭 낮아진 것이다. 기록 실수가 있거나 위반율을 의도적으로 축소했을 가능성도 있다. 국내 식품안전 분야의 한 전문가는 “이런 통계에 문제가 있다면 정부의 정책수립 과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③이원화된 식품안전관리=이원화된 식품안전관리 체계도 문제다. 생산 과정은 농식품부가, 유통 과정은 식약처가 맡으면서 경계가 모호하다. 이번 사태 초기인 16일 오전 농식품부는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 농장이 모두 4곳이라고 발표했지만 바로 이어 식약처는 다른 농장 2곳을 추가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주무부처가 농식품부와 식약처로 이원화돼 중복발표가 되는 상황”이라며 “총리가 범정부적으로 종합 관리해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17일에도 ‘부적합’ 농가 10곳을 잘못 발표하는 등 국무총리실의 컨트롤타워 역할은 눈에 보이지도,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았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농식품부와 식약처가 국무차관과 핫라인으로 연결돼 두 부처를 조율하고 있다”고만 해명했다.
④아직도 먼 친환경인증 제도, 사육 시스템=이번 사태에서 소비자들은 특히 ‘친환경인증’ 농가에서 무더기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정부의 전수조사 결과 ‘부적합’ 농가 49곳 중 친환경 농가는 31곳에 달했다. 또 친환경인증 기준을 어긴 37개 농가도 추가로 적발됐다. 소비자들의 불안은 가중되는데 정부는 친환경인증 기준만 어긴 농가에 대해 ‘친환경’ 마크를 떼고 일반 계란으로 유통이 허용된다는 원칙론을 내세웠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나섰지만 농식품부가 농가들의 거센 반발을 뚫고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얼마나 강화된 개선책을 내놓을지는 미지수다. 20일에는 기준치 이하이기는 하나 경북의 두 농가에서 독성물질인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DDT)이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정부가 사태를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정부는 피프로닐 등 다른 살충제 성분은 기준치 이하더라도 ‘부적합’ 판정을 내려왔다.
A4 용지보다 좁은 공간에 산란계를 가둬놓고 닭을 ‘알 낳는 기계’로 전락시킨 밀집 사육환경도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국내 산란계 농가의 99%가 이러한 방식으로 사육하고 있어 단기간 내 전환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강광우·서민준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