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순환출자 문제 해결 대상 현대차그룹이 유일”=국내 대기업 집단의 지배구조와 관련해 늘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순환출자 고리를 바탕으로 적은 지분을 가진 총수 일가가 그룹을 지배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등 각종 폐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도 예외가 아니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는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로 이뤄져 있다. 현대차가 기아차 지분 33.88%를 보유하고 있고 기아차는 모비스 지분 16.88%를 갖고 있다. 그룹 총수인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 5.2%, 모비스 6.96%의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그룹 경영권을 승계할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꾸준히 주력 계열사 주식을 사 모으고 있지만 보유지분이 현대차 2.28%, 기아차 1.7%에 불과하다.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인 모비스 지분은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다른 대기업 집단과 마찬가지로 현대차그룹 역시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는 등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하는 것이 경영권의 안정적인 승계다. 정 부회장이 현 상황에서 경영권을 승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아차가 보유한 모비스 지분을 취득하는 것이다. 모비스를 지배하면 현대·기아차를 모두 지배하는 동시에 지난 2014년 이후 금지된 신규 순환출자 구조 해소도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모비스 지분을 취득하는 데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이다. 21일 종가(25만2,500원) 기준으로 모비스 지분 16.88%를 매입하는 데 드는 비용이 4조원을 넘는다. 여기에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해소하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어 정 부회장의 모비스 지분 취득이 ‘모범 답안’이 아니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재계 “지배구조 개편에는 시간 필요…점진적 추진 바람직”=재계와 증권가에서는 이 같은 이유에서 현대차그룹이 지주사 전환을 꾀할 것이라는 전망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현대차·기아차·모비스 등 3개 회사가 투자 부문과 사업 부문으로 인적분할한 뒤 3개 회사의 투자 부문을 합병하는 방식이다. 순환출자를 해소하면서 정 부회장이 해당 지주사 지분을 취득함으로써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또 다른 상호출자가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다. 기존 순환출자는 해소되지만 현대모비스의 2대주주인 현대제철이 기아차를 최대주주로 두고 있어 인적분할 과정에서 새로운 지주사와 상호출자관계가 만들어진다. 현행 신규 순환출자 금지법에 따르면 대기업 집단이 새로운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거나 기존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제철을 둘러싸고 신규 순환출자 고리가 발생하는 것은 지주사 전환이라는 큰 그림에서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면서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현대글로비스도 현물 출자할 수 있어 일감 몰아주기 문제 등도 해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지주사 전환이 여의치 않을 경우 총수 일가가 사재를 출연해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취득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정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23.3%)과 현대엔지니어링 지분(11.7%)을 팔아 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는 방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방식이지만 일감 몰아주기 제재 기준 확대라는 변수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부당한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근절을 위해 제재 기준이 되는 상장사 지분율 요건을 기존 30%에서 20%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해당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정 부회장은 내부거래 비중이 70%에 육박하는 글로비스 지분을 줄여야 한다. 정 부회장은 글로비스 지분 23.29%를 보유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지주사로 전환할 가능성이 여전히 높게 점쳐지지만 실제 추진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아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순환출자 고리 해소와 지배구조 개편이 하루아침에 해결하기 힘든 문제인 만큼 공정위를 비롯한 정부가 시간을 두고 개편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행경기자 sain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