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지난 14일 법무·재무담당 임원과 정부세종청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정거래위원회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네이버를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포함 시킬 때 동일인(총수)을 법인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순수 민영기업으로는 사실상 첫 사례다.
취지는 긍정적이다. 기업집단의 동일인을 정해두는 것은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 창업자의 가족과 친인척은 네이버를 비롯해 계열사에 지분이 없다. 본인 지분도 4.64%로 기관투자가보다 낮다. 사익 편취 규제 대상이 아니다. 심지어 그는 “경영세습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도 밝힌 상태다. 구글·페이스북 창업자가 경영권을 지키면서 투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의결권 없는 주식을 발행하는 것과도 결이 다르다. 이재웅 다음 창업자가 네이버의 지배구조를 극찬하고 ‘총수 없는 대기업’ 지정을 지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정위는 ‘규제의 일관성’을 내세운다. 기업집단의 동일인 지정은 지분 등 정량적 숫자가 아니라 ‘실질 지배력’ 등 정성적 영향력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형제 경영’ 체계를 유지한 두산그룹의 동일인을 맏형 박용곤 명예회장으로 정한 이유도 내부 상징성과 영향력을 고려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사내이사이자 글로벌최고투자책임자(GIO)라는 직함을 갖고 활동하는 이 창업자는 총수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이 창업자가 ‘총수’라는 책임 있는 자리를 거부하려면 일반 국민과 투자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각종 ‘갑질 논란’으로 반(反)기업 정서가 강해진 요즘에는 더 그렇다. 이 창업자가 “나도 언제든 잘릴 수 있다”고 말했지만 많은 기업인의 거짓말을 봐 온 일반 국민과 투자자는 의아해한다. 기업 불신의 환경을 만든 것은 네이버만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총수 없는 대기업이 되기 위해선 “다르다”는 것을 직접 보여줘야 한다.
흔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말한다. 해결의 열쇠는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줄 ‘소통의 디테일’에 있다. 이 창업자가 어떻게 더 많은 권한을 내려놓고 주인 없는 기업을 만들 것인지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실천하는 진정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mingu@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