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밥심’이라지만 사실 밥보다 더 오래 우리 밥상에 올랐던 주식의 형태는 바로 ‘죽’이다. 재료에 따라, 조리법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까닭에 죽은 어느 곳에서든지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때로는 임금님의 수라상에 별미로 오르기도 했고, 어려운 시절에는 서민들이 헛배라도 채울 수 있는 구황 음식의 역할을 했다.
재료 손질과 조리에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탓에 죽은 한때 ‘환자식’으로만 명맥을 이어왔지만 2000년대 프랜차이즈 죽 업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일상식으로 완전히 자리 잡은 모양새다. 가벼운 한 끼 식사로, 때로는 보양식으로 심지어는 숙취 해소 음식으로 각광 받으며 언제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는 메뉴가 된 것이다.
‘불고기 낙지죽’과 ‘떨어지지 않는다’는 중의적인 의미가 담긴 이름으로 수험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불낙죽’. /사진제공=본아이에프
◇임금님 수라상부터 보릿고개 민초들의 밥상까지=곡물요리의 최초 형태로 추정되는 죽은 농경문화에 기반을 둔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발달해 왔다. 재료나 조리법 등에 따라 보양 음식, 별미음식 등으로 구분하며 실제 한국 문헌에 수록된 종류만 40여 종에 달할 정도로 한국인에게 익숙한 생활 요리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메뉴인 만큼 과거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죽은 아이러니하게도 상류층과 서민 모두에게 사랑받은 음식으로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 상류층에서는 육류나 어패류, 우유 등을 넣어 영양식이나 보양식 등 고급 죽류로 발전시켰다.
특히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임금에게 이른 아침 식사로 흰죽·잣죽·깨죽·흑임자죽 등을 올렸으며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인종의 건강이 악화함에 따라 우유로 만든 타락죽을 영양식으로 권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정조 역시 겨울철이면 늘 우유죽을 먹고 힘을 내어 체력을 유지했다고 한다.
반면 서민들은 적은 양의 곡물만으로 여럿이 나누어 먹기 좋도록 시래기, 산나물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섞어 뭉근하게 오래도록 끓인 죽을 먹었다. 이 때문에 가난한 이들에게 죽은 흉년에 모자란 곡식 대신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구황 음식으로 목숨을 연명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음식이었다.
현대에 와서는 몸이 아픈 사람의 회복식이자 바쁜 하루를 보내는 현대인들의 아침 대용식, 원기회복을 위한 보양식, 색다른 맛의 이색별식 등 새로운 메뉴로 개발돼 상황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는 일상식으로 변화했다. 최근에는 이색 영양죽을 중요한 날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는 문화도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바쁜 현대인들의 ‘힐링식’으로 각광…건강죽 선물하는 문화도=죽의 변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수치가 바로 소비자의 연령대다.
과거에는 비교적 높은 연령대가 주로 찾았던 것에 비해 이제는 젊은이들도 죽을 많이 찾는다. 국내 최대 죽 프랜차이즈 본죽을 운영하는 본아이에프에 따르면 멤버십 서비스 고객을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 20~30대 비중이 58%로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이 같은 변화는 새로운 메뉴 개발과 젊은 세대에 맞는 모바일 마케팅 덕분이다. 본죽은 호박죽이나 동지팥죽 등의 전통죽과 삼계죽, 전복죽 등의 보양죽은 물론 다양한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메뉴들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소비자 아이디어 공모전을 통해 출시된 본죽의 이색 메뉴로 ‘불낙죽’은 ‘아니 불(不)’, ‘떨어질 낙(落)’자를 사용해 ‘절대 시험에 떨어지지 않는 죽’이라는 콘셉트로 수험생들에게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실제 해마다 수능 날이면 새벽부터 수험생 죽을 사려는 학부모들로 매장은 장사진을 이룰 정도다. 실제로 지난해 수능 전날엔 평소 매출 대비 약 56% 증가하며 ‘수능 특수’를 누렸다. 당시 죽 판매량은 총 16만 그릇으로 이는 기존 평일 대비 약 6만 그릇 더 팔린 수치다. 전체 60만 명의 수능 응시생 가운데 약 10%가 죽을 구매한 셈이다.
이 외에도 본죽은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건강한 한 끼 식사의 의미를 담아 죽을 간편하게 선물로 주고 받을 수 있도록 모바일 상품권을 도입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올해 1분기 카카오톡과 자사 기프티콘 채널을 통해 판매된 모바일 쿠폰은 총 19만 4,675건으로 2015년 1만 9,637건과 비교하면 2년 만에 10배 가까운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죽은 아침 대용식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아침 식사 대용의 간편식 수요를 겨냥해 지난 2012년 첫선을 보인 본죽의 ‘아침엔본죽’은 출시 이후 2017년 7월까지 1,100만개 판매를 돌파했다. 출시 첫해인 2012년 37만 개 판매한 이후 해마다 두자릿수 성장률을 이어오며 지난해에는 445만 개를 판매했다.
본아이에프 관계자는 “죽은 아이부터 노인, 성별을 불문하고 모든 고객들이 위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며 “또한, 보양식이나 이색 별식 등 다양한 콘셉트로 레시피 개발이 가능해 고객들의 수요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 한다”고 말했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