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통상임금 태풍에 대처하는 법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의칙으로 승패 갈릴 소송
1심서 끝나는 경우 거의 없어
노사 소모적 갈등 반복 불보듯
누가 이기든 상처·앙금 남아
양보·타협의 미덕 필요한 때

자동차산업의 분위기가 영 뒤숭숭한 모양이다.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으로 고전을 면하지 못한다고 하더니 GM의 한국 철수 얘기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게다가 기아차의 통상임금 판결도 앞두고 있다. ‘통상임금 태풍’ 운운하더니 급기야 ‘8월 자동차산업 위기설’까지 나왔다. 무려 3조원대의 소송이라고 한다. 신의성실의 원칙(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고 민법 2조에 있는 민법 대원칙)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는 사측으로서는 조바심이 날 만도 하다. 신의칙으로 승패가 갈리게 될 소송이 1심에서 끝나는 법은 없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아서다. 실제로 많은 신의칙 소송이 기업들의 구체적 사정에 따라 결과를 달리했다. 당사자로서는 갈 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다. 이런 소모적인 갈등을 앞으로 하염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히 암담하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나서도 문제다. 통상임금 소송은 노사 양측에 너무도 큰 상처와 앙금을 남긴다. 고약한 성질 때문이다. 통상임금 소송은 연장, 야간 근로수당을 덜 지급했다며 다투는 분쟁이다. 따지고 보면 임금체불 소송이다. 하지만 고의로 임금을 떼먹는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 노사가 서로 합의한 대로 임금을 주고받았는데 뒤늦게 법대로 하자며 다투게 된 경우다. 게다가 그 합의와 관행이 정부의 행정지침을 믿고 따른 결과였으니 더 속상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굳이 소송에 나서게 되는 이유다. 물론 법적 판단은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그래도 인간적으로 보면 마음 상하기 딱 십상이다. 따지고 보면 노사 당사자에게 통상임금은 이겨도 지고 져도 지는 소송이다. 노사관계도 결국 인간관계이기 때문이다. 굳이 승자가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변호사뿐이다. 이번 판결이 조선이나 전자 등 다른 산업에 불똥이 튀어서 변호사들만 또다시 대목 아닌 대목을 맞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로 수많은 기업이 쓰러져가고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어 눈물을 흘릴 때 대형 로펌들만 초호황이었음을 우리는 또렷이 기억한다. 그렇다. 한번 보고 다시는 안 볼 사이라면 통상임금 소송은 해볼 만하다. 만약 동반자로서 앞으로도 같이 ‘으쌰으쌰’ 손발을 맞춰야 하는 관계라면 결코 권할 게 못 된다.

국민에 대한 도리도 아니다. 자동차산업의 위기야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조선산업의 위기도 마찬가지다. 위기의 원인이 세상 변화의 흐름을 잘 읽어내지 못한 탓이라면 어쩔 도리가 없다. 중국이 사드 보복에 나서고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벼르는 바람에 생긴 위기라면 이 또한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안타깝지만 할 수 없다. 통상임금처럼 노사 내부의 갈등으로 위기를 초래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침체의 늪에 노사가 스스로를 밀어 넣는 일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유는 명백하다. 돌이켜보면 1970~1980년대 고도산업 성장기에 기업은 국민들의 희생을 먹고 컸다. 그 어떤 기업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나 기아자동차는 외환위기 당시 수많은 국민들이 나서서 지켜준 회사가 아닌가. 이번 소송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이 도무지 편하지 않은 이유다.

재직자에게만 정기상여금을 지급하는 바람에 용하게 통상임금 태풍을 비켜갈 수 있게 됐다고 안도하는 사용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퇴직자도 정기상여금을 지급 받은 덕에 소송에서 이길 거라고 믿는 노동자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어떤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부디 새로운 협상의 계기로 삼아주기 바란다. 마음이 상하지 않을 만큼 노사 양측이 서로 양보하고 또 양보해서 타협해주기 바란다. 훌훌 털고 일어나 국민들을 향해 노사가 함께 웃어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이기는 유일한 길이다. 결코 쉽지 않겠지만 꼭 그래줬으면 한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