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입장바꾼 정부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

정부, 인권보고서 유엔 제출
"절대 불가" 기존입장서 선회
군 동성애 처벌도 폐지 검토
집회 과잉진압 조사해 조치
비정규직 등 처우개선 구상도

정부가 종교 등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도입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고집해온 ‘절대 불가’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셈이다. 아울러 동성애를 처벌해온 군형법 조항에 대해서도 폐지를 검토하기로 하는 등 인권과 관련해 진일보한 입장을 국제사회에 밝히기로 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정부 각 부처의 의견을 취합해 작성한 유엔 인권이사회 제3차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 국가보고서를 지난 11일 유엔에 제출했다. UPR는 유엔 회원국을 대상으로 각국 인권 상황을 검토한 뒤 개선 사항을 권고하는 제도로 4년6개월 주기로 실시된다. 권고안의 구속력은 없지만 이를 수용하는 정도에 따라 해당국의 ‘인권 옹호’ 의지를 평가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한국은 이번에 지난 2012년 각국으로부터 받은 70개의 권고에 대해 62개의 이행 방안을 밝혔다.

보고서에서 정부는 종교 등 신념을 이유로 한 집총거부자의 대체복무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판단할 사항”이라며 “헌법재판소는 공개변론을 개최했고 국회에도 관련 법률안이 제출됐으며 관련 부처도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등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공개한 초안에서 “한반도의 특수한 안보 현실과 병력 수급 문제, 병역 형평성 등을 고려해 즉시 도입은 어려운 상황”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진일보한 입장이다. 정부는 2013년 보고서에서도 대체복무제에 대해 ‘곤란하다’고 밝혔다.


‘동성애 처벌’을 규정한 군형법 제92조 6의 폐지 논란과 관련해서도 당초 ‘개정 검토’ 입장에서 ‘폐지 검토’로 한발 나아갔다. 보고서는 “군이라는 공동생활의 특수성을 감안한 것”이라면서도 “다만 폐지하는 내용의 군형법 개정안이 발의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초안은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폐지’가 아닌 ‘처벌 대상 범위를 제한하는 방향으로의 개정’을 제안했다.

경찰의 집회 과잉대응 문제에서는 초안에서 ‘집회 현장에서 발생한 집회 참가자의 부상’으로 모호하게 표현했던 고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해 “2015년 11월 집회 현장에서 부상을 입고 2016년 9월 사망한 백남기 농민 사건”이라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상응한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경찰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해 과거 경찰의 집회·시위 대응 과정 및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해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동 문제에서도 비정규직 문제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 방안을 포함하면서 ‘노동존중사회’ 실현 의지를 드러냈다. 보고서는 공공과 민간 분야 모두에 대해 정규직 전환, 처우 개선 등의 구상을 밝혔다. 법률로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했던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해서도 “정부 차원의 보호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사형제 폐지는 ‘검토 중’, 국가보안법 폐지는 ‘남용 소지 차단’ 등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지난 보고서나 초안에 비해 정책 기조가 전면적으로 재조정됐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더라도 시민단체 등 여론을 최대한 수렴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