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옥 성균관대 중국연구소장·정치외교학과 교수/권욱기자
국내 최고의 중국 전문가로 평가받으며 서울경제신문 외교안보 자문단(펠로)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희옥(57)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는 “한중 관계가 기존의 관성대로 갈 수는 없다”며 “대중 정책 전반을 리셋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아 23일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가 해결돼도 양국 관계가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바뀐 구조를 정확히 인식하고 한중 관계 재정립에 나서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교수는 사드 사태로 한중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면서 역사적 과도기에 들어선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과거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한중·북중·미중 관계로 구성됐다면 지금 중국의 대외전략은 지역전략이자 세계전략”이라며 “그 과정에서 한반도가 새롭게 포착됐고 한중 관계도 변곡점을 맞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양국 관계가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엔 기술과 자본을 가진 한국과의 보완관계가 강조됐지만 지금은 경쟁관계가 부각됐다”며 “한중이 진출한 해외시장의 성격도 한층 까다로워져 경쟁구도가 심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대중 정책 재정립이라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따르는 경로 의존적 대중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면서 “새로운 구조에 맞게 정책 전반을 리셋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드 문제에 대해 이 교수는 “한국과 중국 중 일방의 완전한 양보로 풀릴 수는 없는 문제”라고 단언했다. 이 역시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은 한반도 사드 배치를 안보이익 침해라고 주장하고 있고 한국은 현존하는 북핵 위협에 대한 억지력 확보 차원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기에는 구조의 성격이 강하다”며 “상당 기간 해결이 안 된다면 어떻게 관리해갈 것인가가 중요하고 따라서 ‘극복’보다는 ‘관리’ 모드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사드는 과거 한중 갈등을 촉발했던 문제와는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한 사안이다. 이 교수는 “과거 마늘 파동과 동북공정은 연성 안보 이슈(soft security issue)였고 양자 간의 문제였지만 사드는 양자가 풀 수 없는 외생변수다. 한반도 이슈가 까다로운 경성(hard) 안보 이슈로 전환된 것”이라며 “어려운 현안인 만큼 여러 가지 사안을 한 테이블에 올려 패키지 협상을 해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사드에 대한 중국의 민감도를 낮추는 것이 양국 갈등의 단기적 출구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핵 민감도가 떨어지면 사드 민감도도 떨어질 가능성이 크므로 남북 관계 개선에서 한중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만약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시행할 경우 한국이 여기에 참여하면 한중 관계는 끝난다. 한미일 안보협력 문제도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올해 하반기 대화의 기회가 열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북미 대화가 모색되고 있다고 보이는 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주도적으로 움직이면 남북 대화도 이뤄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아울러 “중국의 경우 19차 당대회(10월 말 또는 11월 초 유력) 전후 국내 정치 이슈가 국제 정치 이슈를 압도해 외교가 디커플링되면 한중 대화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면서 “문 대통령이 19차 당대회 이후 올해를 넘기지 않고 방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야 내년 2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답방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교수는 미중의 패권 다툼이 진행돼 양국의 위상 정립이 이뤄지면 한반도가 미중 관계의 종속변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한국 스스로가 한반도 문제 해결에 나서 독립변수가 될 수 있도록 움직여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고 강조했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