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인근에서 경찰과 영등포 외국인 자율방범대원들이 중국동포들의 ‘만남의 광장’인 대림역 12번 출구 앞에서 방범활동을 하고 있다./송은석기자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은 한때 경찰들이 근무를 꺼리는 지역이었다. 특히 대림2동은 전체 주민의 절반가량이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동포들로 살인·강도 등 강력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경찰이 조선족의 칼에 찔리는 사건도 있었다. 대림동은 일반 시민에게 중국동포의 범죄 온상지로 인식됐다.
그랬던 대림동이 달라졌다. 주민들은 “위험한 사건들은 이제 옛일”이라며 “중국동포들은 자기가 알아서 자기 가게 앞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치울 정도”라고 전한다. 낯선 향신료 냄새와 중국어 간판, 익숙한 듯 다른 말투로 다른 여느 지역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을 주는 대림동. 그곳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중국동포 2·3세 인성교육으로
한국 학생과 공감대 형성 효과
◇중국동포의 우범지대는 옛말= 지난 18일 오후9시10분께 대림역 12번 출구 앞. 초록 조끼를 갖춰 입은 중년 여성 20여명이 줄지어 섰다. 동네 주민들은 이 광경이 익숙한지 “오늘도 고생이 많다”며 인사를 건넸다. 중국동포들로 구성된 자율방범대다. 격주 금요일마다 경찰과 함께 대림동을 돌며 방범활동을 벌인다. 이날은 외국인자율방범대 25명, 서울시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30명, 영등포경찰서 36명 등 총 144명이 참여했다. 지난 7년간 자율방범활동을 이끌어온 남명자 전국동포산업재해인협회 총무국장은 “처음에는 불만도 있었지만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스스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 꾸준히 이어왔다”고 말했다. 경찰도 2013년부터 대림동을 ‘외사치안안전지역’으로 지정, 특별형사활동을 전개하는 등 특별관리를 해오고 있다.
이런 노력은 차츰 성과를 내고 있다. 영등포경찰서에 따르면 대림동 일대 살인·강도 등 5대 범죄 발생 건수는 2015년 상반기 624건에서 지난해 521건, 올해 471건으로 2년 만에 25%나 줄었다. 나병남 대림파출소장은 “올 2월 이곳에 처음 부임했을 때는 걱정이 앞섰지만 막상 근무해보니 다른 곳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주민들도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10년째 대림동에서 살고 있는 장정기씨는 “중국동포들이 정착 초기에는 문화 차이 탓에 크고 작은 사건이 있었지만 동포 2세와 3세가 자리를 잡으면서 한국사회에 적응해 예전 같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전했다.
지난 20일 오전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많은 중국동포들과 시민들이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을 찾았다. /이두형기자
◇다문화 자녀 교육부터 시작되는 더불어 살기=대림동이 변신한 또 다른 비결은 중국동포 2세·3세에 대한 교육이다. 대림동 일대 학교들은 다문화 가정 학생이 많은 만큼 다름을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인성을 갖추도록 세심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대동초등학교의 ‘대동다문화 국악 오케스트라’가 대표적이다. 주 1회 이상 국악을 함께 배우며 다문화 학생과 한국 학생 간 공감대를 형성한다. ‘모두모아 축구교실’은 함께 땀을 흘리며 단결심과 협동심을 키운다. 저소득층 가정과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공예·공연관람·캠프 등을 운영해 한국사회 정착을 돕는 ‘토요가족문화활동’도 진행한다. 대림동에서 15년간 살고 있는 중국동포 박장기씨는 “어른들은 주변의 시선이 주는 상처를 어떻게든 견디지만 아이들에게는 같은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며 “국적을 가리지 않고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아이들을 보면 언젠가는 우리도 한국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동산투자·지역상권도 견인
당당한 경제주체로 자리매김
◇일요일에는 색다른 매력으로 변신=20일 일요일 오후1시께. 오전부터 비가 내렸지만 대림동 거리는 노래방에서 흘러나오는 중국가요로 뒤덮였다. 중국동포들의 ‘만남의 광장’인 대림역 12번 출구부터 늘어선 식당에는 중국 옌볜 향토음식에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중국동포들은 주로 일요일 낮에 모임을 한다. “일요일 장사로 월세를 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바로 ‘불일(불타는 일요일)’이다. 식당 같은 서비스업과 건설업 등에 주로 종사하다 보니 일요일이 그나마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때다. 안산에서 식당 보조일을 하는 백설희씨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일요일이 그나마 한가하다”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저녁에는 다시 각자 일하는 곳으로 돌아가야 해 낮을 밤처럼 즐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요일 낮부터 흥청망청 노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고 설명했다.
◇당당한 지역 경제주체로 자리매김=중국동포들은 이제 대림동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경제주체다. 영등포구청에 따르면 중국 국적의 외국인이 영등포구 토지를 취득하는 데 쓴 돈은 지난해 3·4분기 46억1,000만원에서 올 2·4분기 150억5,600만원으로 3배 넘게 늘었다. 중국동포들은 지역 상권을 이끌고 있는 중요한 소상공인들이기도 하다. 대림동에 10년째 살고 있는 김용기씨는 “대림동이 중국동포들의 확실한 상권이자 생활터전이 되면서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며 “한국인이 꺼리는 일을 하면서 공백을 메우고 경제력도 갖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한국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대림동의 중국동포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을 거둘 때가 됐다”고 힘줘 말했다. /이두형기자 mcdjr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