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 제작 더 램프 박은경 대표 인터뷰] "'택시운전사'에 실린 이야기 힘에 이끌렸죠"

"5·18 고교시절 처음 접해…
확장성 부여해준 관객께 감사"
제작사 설립 5년만에 천만영화
제일기획서 "며느리도 몰라"
'마복림 고추장' 광고 히트도

영화 ‘택시운전사’를 제작한 더 램프 박은경 대표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욱기자


작품성 외에 흥행 변수가 많은 요즘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다룬 ‘택시운전사’가 올해 첫 천만 영화가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예측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영화가 공개된 이후 작품이 주는 묵직한 메시지와 감동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말을 아꼈고, 마케팅 역시 조용하게 진행됐다. 이전 정권이었다면 개봉이 어려울 수도 있는 민감한 소재에 영화 ‘변호인’에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 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오른 송강호까지, 영화는 색안경을 끼고 보자면 그야말로 ‘올 블랙’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기우는 상식적이지 않은 정권이 만들어낸 자기검열이었다는 것을 영화 ‘택시운전사가’ 증명해냈다.

‘택시운전사’를 제작한 더 램프의 박은경(45·사진) 대표를 강남구 논현동 쇼박스(086980)에서 만났다. ‘택시운전사’ 제작에 들어가던 2014년 만해도 어려운 결정이지 않았냐고 묻자 박 대표는 오히려 기자를 당황하게 할 정도로 단호한 어조로 “전혀 그런 걱정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80장 짜리 시나리오로 처음 접했던 영화의 이야기가 가진 힘에 이끌렸다”며 “오로지 영화를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택시운전사’는 27일까지 누적관객 1,136만 8,675명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 흥행 순위 11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영화로는 15번째, 외화까지 합치면 19번째 천만 영화인 ‘택시운전사’가 관객들을 이토록 끌어당기는 힘은 무엇일까? “영화를 만들고 관객들에게 보여드리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커져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영화는 이런 영화인 것 같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마케팅도 이런 방향이면 좋지 않을까’라는 조언에도 처음에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결국 그게 맞았더라고요. 관객들의 반응이 영화에 확장성을 부여했죠. 영화를 보시고 ‘아이들 혹은 부모님과 함께 보겠다’는 반응들이 영화에 힘을 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택시운전사’를 제작한 더 램프 박은경 대표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욱기자


“무거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던 것은 배우 송강호의 힘이 주효했다”는 그는 송강호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존경하죠. 이전 작품을 통해서 그의 연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전체를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캐스팅을 하고 나서는 영화를 같이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조연, 단역까지도 다 배우로 인정하는 분이세요.”

박 대표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처음 접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도 전했다. 서울대 학생들이 벽보에 붙인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두 장의 사진은 어린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서울대 옆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특히 벽보에 광주의 학교 졸업사진이 나오는데 아이들이 몇 명 없었어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학생들이 희생을 당해서 졸업앨범에 사진이 없는 거예요. 사진을 보고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러다가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을 듣게 됐고, 공연도 갔어요. 끊임없이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벽보를 붙이는 의지에 대해서 어린 학생으로 뭔지 모를 어떤 감정을 가졌던 것 같아요.”

서강대 국문과를 졸업한 이후 제일기획, IBM을 거쳐 2003년부터는 쇼박스 마케팅 팀장과 투자 팀장을 지낸 그는 2012년 영화 제작사 더 램프를 설립하고, ‘동창생’(2013), ‘쓰리 썸머 나잇’(2014), ‘해어화’(2015) 등을 제작했다. 설립 5년 만에 천만 영화를 만들어 내며 그는 이제 ‘도둑들’, ‘암살’의 케이퍼필름 안수현 대표, ‘베테랑’의 외유내강 강혜정 대표와 함께 천만 영화를 배출한 여성 제작자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제일기획 재직 당시 그는 “며느리도 몰라”라는 유행어로 대한민국을 강타한 바로 그 ‘마복림 할머니’ 고추장 광고를 성공시켰다. 이후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업종인 IBM 마케팅팀으로 이직했다. 그러나 이후 회사 방침에 따라서 ‘여성 영업사원 쿼터’가 생겼고, 마케팅으로 들어간 그는 영업담당으로 직무가 변경됐다. 이후 또 이전 이력과는 거리가 있는 영화 배급사 쇼박스의 마케팅팀으로 전직한다. 쇼박스에 입사 후 맡은 영화는 1,174만 명을 동원한 ‘태극기 휘날리며’였다. 영화계에 입문하자마자 천만 영화를 마케팅하고, 제작자로서는 5년 만에 천만 영화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건 그의 이런 이력들이 알게 모르게 조화를 이뤘기 때문일 것이다. “광고 일을 할 때도 정말 재밌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IBM에서 영업을 하게 됐는데, 영업은 정직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술도 마셔야 하고 여자가 하기 힘든 일이죠. 그런데 결국 술을 사는 게 아니라 마음을 사는 게 영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죠. 고객이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에 담긴 의미를 파악해서 고객의 마음을 얻어야 해요. 영화도 결국 마음을 얻는 작업이죠.”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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