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택 "각자의 '난벽'에 도전하는 모든 이에게 희망 주고싶어"

세계 최초 '로체 남벽' 등반 나서는 홍성택 대장
'전설'들도 오르지 못한 난벽
개인 통산 다섯 번째 도전
내달 4일 네팔 카트만두 출국
성공시 韓 최초 '피켈상' 탈수도
"4전5기…희생없이 성공할 것"

성공 다짐하는 홍성택 대장. /권욱기자


‘홍성택(Hong) VS 로체(Lhotse).’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매체 내셔널지오그래픽은 홍성택(51) 대장의 로체 남벽 등반 도전을 이렇게 표현한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중 4번째로 높은 로체(8,516m)는 많은 산악인이 등반에 성공한 곳이지만 남벽을 통한 정상 정복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다. 홍 대장은 ‘불가능’으로 여겨지는 로체 남벽 등정에 가장 근접한 산악인으로 세계 산악계의 인정을 받는 인물이다. 아시아 유일의 내셔널지오그래픽 탐험가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오는 9월4일 네팔 카트만두로 출국해 개인 통산 다섯 번째 도전에 들어가는 그를 서울경제신문이 최근 만났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로체 남벽은 등반의 ‘전설’들에게 좌절을 안긴 악명높은 곳이다. 이탈리아 영웅 라인홀드 메스너는 지난 1980년대 세계 최초로 14좌 완등에 성공한 뒤 로체 남벽 등반 도전에 두 차례 모두 실패하고 나서는 “21세기에나 가능한 일”이라 예언하고 포기를 선언했다. 14좌의 새로운 길을 뚫은 위업을 인정받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메달을 받기도 한 폴란드의 괴물 예지 쿠쿠츠카는 “유일하게 남은 꿈”이라고 여긴 로체 남벽에 도전하다 1989년 추락사하고 만다.

홍 대장은 1999년 처음 로체 남벽 등반에 참여한 뒤 2007년, 2014년과 2015년 등 4차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홍 대장은 “로체 남벽은 기술과 체력·경험을 모두 요구하는 ‘난벽’으로 극심한 두려움 때문에 다시 도전하는 일이 드문 곳”이라고 소개했다. 5,900m부터는 80도 경사의 빙벽으로 이뤄져 “두 발을 한꺼번에 붙일 곳이 거의 없고 식사는 물론 대소변도 로프에 매달린 채 해결해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2년 전 4차 도전 때는 8,200m까지 올라 정상을 불과 316m 남겨놓았으나 기상 악화로 내려와야 했다. “당시 무리를 했다면 등정에 성공할 수도 있었겠지만 희생이 따르는 성공은 완벽한 성공이 아니라는 게 제 원칙이다.”

홍성택 대장이 2015년 로체 남벽 4차 등반에서 빙벽을 오르고 있다. /사진제공=홍성택 대장



누구보다 정상 가까이 도달했기에 세계적으로도 관심이 뜨겁다. 도전 소식을 들은 스페인 산악인이자 의사인 호르헤 에고체아가 로드리게스(51)가 동반을 제안했다. 그는 14좌를 완등한 유럽의 유명인이지만 “대장이 아닌 대원으로서 홍 대장의 지휘명령을 따르겠다”며 합류했다. 뉴욕타임스와 AP통신, 그리고 폴란드와 독일 등의 매체들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CNN, 영국 BBC는 현지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원정에는 3명의 촬영팀이 따르고 영상 기록은 향후 다큐멘터리나 산악영화 제작에 활용될 계획.

말을 앞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홍 대장이지만 “한국 산악사를 넘어 세계 등반에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는 등반이 될 것”이라고 가치를 부여했다. 웬만한 고산과 극점은 정복됐기 때문에 등정 횟수보다는 ‘얼마나 어려운 코스를 어떤 방법으로 성공했느냐’를 높게 쳐주는 게 세계 산악계의 추세다. 그는 “성공한다면 ‘산악계의 오스카상’ 격인 이탈리아 ‘황금 피켈상’ 한국인 최초 수상이 유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용인대 유도학과 출신 홍 대장은 20대 중반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산으로 눈길을 돌렸다. 강인한 체력과 성실함을 알아본 허영호 대장에게 처음 발탁됐고 고(故) 박영석 대장, 엄홍길 대장의 등반팀을 모두 거치며 그들의 기술과 장점을 익혔다. 산전수전을 다 겪고 40대 중반에서야 자신의 팀을 꾸린 그는 남이 밟지 않은 땅과 남이 하지 않은 방식의 도전을 이어왔다. 탐험에서 2012년 세계 최초로 베링해협을 도보로 횡단하는 쾌거를 이룬 그는 등반에서는 전인미답의 로체 남벽 등정을 바라보는 것이다.

남다른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홍 대장에게 도전이란 뭘까. “도전은 인류 역사를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다. 탐험가와 산악인은 퍼포먼스로 도전정신을 일깨우는 기능을 한다. 도전정신이 무뎌진 나라들은 경제도 정체됐다. 경제 선진국과 등반 선진국이 거의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번 원정을 앞두고 홍 대장은 ‘최순실 사태’의 불똥을 맞기도 했다. 기업들이 스포츠 지원을 꺼린 것. 도전이 무기한 연기될 수 있던 위기 상황에서 사업가인 박종찬 원정대 단장과 G7타워 설진욱 대표가 후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10월25일을 ‘D-데이’로 예상하는 홍 대장은 “안전하게 성공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누구나 각자의 ‘로체 남벽’이 있을 것이다. 꿈을 정하고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