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서민준·김영필·이태규기자 morandol@sedaily.com
복지와 일자리는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는 분야답게 굵직한 사업들이 새로 생기고 기존 제도도 지원 수준이 대폭 늘었다. 총예산은 146조 2,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140조원을 돌파했다. 증감률은 12.9%로 모든 분야를 통틀어 가장 높다.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4%에 달한다.
세부적으로는 영세업체에 대한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이 눈에 띈다. 내년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크게 오른 데 따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차원으로 30인 미만 기업의 근로자 약 300만명에게 월 최대 13만원을 지급한다. 지원 대상자가 처음 정부가 밝혔던 218만명보다 크게 늘었다. 하지만 1인당 지원액수가 적어 기업의 부담을 낮추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소득 하위 70% 어르신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과 장애인연금은 한 달 20만원에서 25만원으로 올렸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대한 부담도 낮춘다. 만 8세 이하 아이를 둔 부모가 근로시간을 단축할 때 정부가 지원하는 급여를 월급의 60%에서 80%까지 늘리기로 했다. 올해 추가경정예산 때 강화된 육아휴직급여가 한 차례 더 업그레이드됐다. 한 자녀에 대해 두 번째로 육아휴직을 쓰는 부모(대부분 아빠)에 대한 지원을 모든 자녀 동일하게 최대 200만원을 보장하기로 한 것. 지금까지는 첫째 아이는 150만원이었다. 서민과 청년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공적 임대주택 확대에는 2조5,000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총 17만채의 임대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다.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을 위해서는 3개월간 30만원의 수당을 지급한다. 지원 대상은 6만명이다. 올 추경 때 5만5,000명보다 5,000명 늘었다.
■R&D·교육
2018년도 교육예산을 보면 ‘교육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현 정부의 철학이 엿보인다. 64조1,000억원을 투입해 올해보다 12.4%나 뛰었다. 복지 다음으로 예산이 많이 늘었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약 2조원)을 전액 국고에서 지원한다. 올해는 누리과정 예산 가운데 8,600억원만 지원했다. 그간 지방자치단체가 “보육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며 지자체분 보육예산을 투입하지 않는 바람에 보육지원이 끊길까 노심초사하는 학부모가 많았다.
대학생의 경우 정부가 등록금을 지원하는 ‘반값등록금’ 수혜 대상이 소득 30%에서 40%로 확대됐다. 저소득층 대학생 800명에게 해외연수 기회를 주는 ‘파란 사다리’ 프로그램도 신설됐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아주대 총장 시절 도입한 프로그램으로 이번 예산안에도 직접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저소득층 초중고생에게 정부가 지원하는 교육급여도 크게 늘었다. 초등학생 교육급여는 올해보다 181.6%, 중고생은 70.0% 확대된다.
연구개발(R&D) 사업 예산은 올해보다 0.9% 늘어난 19조6,338억원이 편성됐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개발에 약 1조3,000억원을 투입하는데 그중에서도 인공지능·사물인터넷·빅데이터 등에만 6,518억원이 배정됐다. ‘국민체감형’ R&D 투자를 강화한 것도 특징이다. 치매 조기진단과 치료 등에 필요한 기술 개발에 올해보다 2배 이상 많은 427억원을 투자한다. 조류독감·구제역 등 감염병 대응 R&D에도 29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문화·체육·관광
내년도 문화·체육·관광 분야는 6조3,000억원으로 올해보다 8.2% 줄었다. 20.0% 감소한 사회간접자본(SOC) 다음으로 많이 깎인 것이다. 정부가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해 시행한 지출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은데다 문화·체육계에 유난했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최순실씨가 개입했던 문화 콘텐츠 분야는 특정 기업·개인에 직접 지원하는 예산을 123억원 줄였다. 대신 유통 플랫폼이나 투자·융자 등 간접지원 비중을 높였다.
문화와 관련된 서민복지에 신경을 쓴 흔적도 보인다. 중소기업 근로자 7만명에게 휴가비 10만원을 지원하는 제도가 대표적이다. 프랑스가 1982년부터 시행한 여행 장려제도를 본뜬 것이다. 다만 근로자가 휴가비 지원을 받으려면 본인도 10만~20만원을 적립해야 하고 기업도 일정 부분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
저소득층에게 지급하는 통합문화이용권, 이른바 문화누리카드에 대한 지원도 늘린다. 연간 6만원이던 지원금액을 7만원으로 높인 것이다. 문화누리카드는 영화·공연 관람, 도서·음반 구입, 4대 스포츠 관람 등에 쓸 수 있다.
내년부터 지원을 시작하는 ‘예술인 복지금고’는 예술인들이 긴급하게 필요한 생활비나 의료비를 지원해주는 제도다. 2022년까지 1,500억원의 기금 조성이 목표인데 내년은 일단 15억원을 배정했다. 정부는 이 밖에 국립극장 리모델링과 예술인에 대한 공연장 대관료 지원에도 각각 196억원, 33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산업·SOC
SOC는 예산 구조조정 여파를 가장 많이 받은 분야다. 17조7,000억원으로 11년 만에 20조원대가 무너졌다. 내용을 보면 버스·화물차 졸음운전을 방지하기 위해 첨단안전장치 장착 예산이 171억원 들어가 있다. 최근 고속도로에서 버스 운전자의 졸음운전으로 잇따라 인명피해가 발생하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구체적으로 예산지원을 통해 11m 초과 버스와 총중량 20톤이 넘는 화물차에 대해 첨단장치 장착을 2019년까지 끝낼 방침이다. 차로를 이탈할 때 경고음을 울리거나 앞차와 부딪치려고 하면 운전을 자동으로 멈추는 시스템이다.
SOC 예산 총액은 올해보다 약 4조원 줄였지만 질적인 부분에 대한 투자에 집중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질 향상은 안전과 공공성 강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항만시설의 안전성을 보강하는 데 올해보다 약 500억원 많은 874억원을 투자한다. 댐 안전성 강화에도 50억원을 신규 투입하기로 했다. 서울과 세종을 잇는 고속도로는 국가 재정사업으로 전환해 조기에 완공하기로 했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등의 분야는 내년 15조9,000억여원의 예산을 투입하는데 특히 창업 활성화에 힘을 싣기로 했다. 창업 성공률이 높은 사내창업과 분사(스핀오프)에 대한 지원에 신규로 100억원을 배정했고 대표적인 창업지원제도인 팁스 프로그램은 올해보다 2배 많은 284팀을 지원한다.
탈원전 기조에 따라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은 늘린다. 자가용 태양광 보급 지원 등에 4,36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신재생에너지 핵심기술 개발에는 2,149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그 많은 예산을 가지고 무엇을 했나”라고 질타한 국방 부문에는 또다시 예산이 대거 투입된다. 총액은 43조1,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6.9% 늘어난다. 증감률은 2009년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다. 지방교부금 등 일반·지방행정을 뺀 11개 주요 예산 분야 중 복지(12.9%), 교육(11.7%)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세부적으로 병사 월급이 크게 오른다. 올해 병장 기준 월급은 21만6,000원인데 내년부터 40만6,000원으로 2배 가까이 상승한다. 예산은 1조원에서 1조8,000억원으로 껑충 뛴다. 2022년 병사 월급을 최저임금의 50%까지 단계적으로 올리겠다는 국정과제의 일환이다. 예비군 동원훈련 보상비 역시 1만원에서 1만5,000원으로 상승한다. 군 부사관도 올해 2,605명 뽑는 것에서 내년에는 3,948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방위력 개선 예산도 9년 만에 가장 많이 늘어나(10.5%) 13조5,000억원이 책정됐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킬체인(Kill Chain),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대량응징보복(KMPR) 등 ‘3축(3K) 체계’를 2020년 초반까지 구축하는 데 집중적으로 투자된다.
외교·통일 분야에는 5.2% 증가한 4조8,000억원이 편성됐다. 북한이 29일 동해상에 또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남북 협력 예산은 늘었다. 이산가족 상봉 예산을 34억원에서 84억원으로 올려 잡았다. 과거 최대 개최분인 3회분으로 가정했다. 외교정책에 대한 국민 의견을 듣기 위해 15억원을 들여 국민외교센터도 설립한다. 공청회·학술회의 개최, 여론조사 실시, 시민단체와의 연계 등의 역할을 맡는다.
내년도 농림수산·환경 분야 예산 가운데 눈에 띄는 항목은 ‘제2의 살충제 계란 사태’를 막기 위한 지원책이다. 우선 정부는 친환경 축산농가에 대한 정기적 잔류농약검사를 실시하고 항생제검사를 늘리는 데 필요한 예산을 기존 201억원에서 233억원으로 22억원 늘리기로 했다. 또 가금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가금산물이력제 도입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고 계란 유통센터(GP) 4개를 신축하기 위한 예산(18억원)도 지원할 예정이다. 매년 반복되는 가뭄대책으로는 경기 남부와 충남 서북부 물길을 연결하는 사업을 포함해 총 30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후속 지원책으로 밭고정·조건불리 직불금 단가도 ㏊당 5만원씩 올린다. 소비는 줄어드는데 생산량은 많아 문제가 되는 쌀은 ‘생산조정제’를 시행한다. 쌀 재배농가가 논에 벼 이외의 다른 작물을 재배하면 ㏊당 평균 340만원을 지원한다.
환경 분야에서는 노후 경유차와 화물차 조기폐차 지원 규모를 6만대에서 12만대로 늘린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위한 특별구제계정에 100억원을 정부가 출연하고 살생물제 관리제 도입 시행을 위한 기반 구축과 흡입독성 시험시설 설치를 위해 159억원을 제공한다. 흡입독성 시험시설 구축도 2022년에서 2019년으로 3년 앞당긴다.
이외에도 차상위계층까지 무료 법률구조 지원(29억원)을 확대하고 여성·청소년이 마음 놓고 생활할 수 있도록 여성안심거리 조성, 학교전담경찰관 활동지원에 각각 4억원이 새로 지원된다. 국민참여예산제 시행에도 신규로 23억원을 책정해 국민들의 예산 편성 과정 참여를 독려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