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담배 연기만 봐도 양담배 여부를 가려낼 수 있다는 전매청의 양담배 단속반은 감시의 눈을 번득이며 양담배 흡연자를 가려냈다. 단속반은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은 물론 일반 기업체를 급습해 사무실 책상 서랍을 뒤졌다. 일반 가정에 수색 영장도 없이 들이닥쳐 장롱이며 옷장, 찬장까지 샅샅이 훑었다. 양담배 단속에는 누구 하나 끽소리도 못 냈다. 양담배는 부정(不正)과 사회악이며 그 흡연자는 애국심이 없는 ‘비국민(非國民)’이라고 손가락질받았으니까.
양담배에 불법의 굴레가 씌워진 시기는 정부 수립 직후부터. 아예 수입을 허가하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강점기부터 내려온 연초전매법을 개정, 국산 담배 보급에 나섰다. ‘양담배 흡연·매매·소지시 10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무시무시한 양형 기준에도 양담배의 생명은 죽지 않았다. 양담배를 찾는 수요가 그만큼 많았다. 시중에서 국산담배보다 10배 높은 가격에도 공급이 달려 부정과 비리를 낳았다. 1954년에는 전매청 감시과 단속반이 시중에서 압수한 양담배를 집권 자유당 간부들이 빼돌려 암시장에 내다 팔아먹은 사건도 일어났다.
수입이 금지된 양담배의 공급원은 주한미군 PX(영내 매점). 군용 열차에 실려 동두천 미군 부대에 보내는 양담배 24상자를 빼내려던 한국인 3명이 양주에서 화차 문을 절단하다 미군의 총격을 받아 1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은 사고가 일어났다(이 사건은 공모했던 미군이 들킬 것 같아 한국인들에게 총격을 가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한국은 형사재판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1973년 5월에는 경기도 시흥에서 양담배 밀매 단속에 나섰던 수원전매청 소속 단속반 4명이 미군 병사 10여 명에게 몽둥이세례를 받아 1명이 숨지고 3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역대 지도자들 역시 하나같이 양담배를 공공의 적으로 돌렸다. 1962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아직도 양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다는데, 그런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다’며 ‘적발해 처벌하는 동시에 명단을 공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명단이 공개된 적은 없지만 비싼 양담배를 접할 길이 없는 서민들은 이런 뉴스에 손뼉 쳤다. 동시에 중산층 이상은 권력의 권위에 얼어붙었다. 전두환 대통령도 외래품 선호사상을 뿌리 뽑는다며 1984년 양담배를 피우다 적발된 407명의 직업을 공개한 적은 있어도 정작 실명을 밝힌 적은 없었다.
국민의 숨소리마저 규격화할 것 같던 서슬 퍼런 5공이 정권 말기에 양담배 판매를 허용한 이유는 통상 압력. ‘미국 상품의 소지 및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와 어떻게 교역할 수 있느냐’는 거대 담배회사들의 질책을 받은 미국이 ‘슈퍼 301조’를 내세워 시장개방을 요구하자 쌀과 쇠고기를 비롯해 담배까지 시장을 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사회 문제로 부각된 ‘과소비 풍조’를 두고 미국 언론이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트렸다’고 조롱하는 이면에서 미국 담배업계는 닫혔던 한국 시장의 빗장을 푸는 것은 물론 자국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광고 규제의 벽까지 허물었다.
해금 직후 양담배 판매는 우려와 달리 미미한 것 같았다. 미국 담배회사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바깥에서는 외산 담배를 멀리해도 집에서는 곧 피우게 된다’며 매출 증가를 낙관했다는 것이다. 외국 담배회사들의 조롱처럼 한국인은 겉과 속이 달랐기 때문일까. 시장 개방 10년 넘게 한자릿수에 머물던 외국계 담배의 점유율은 2000년 10%를 넘어선 이래 2002년 20%, 2007년 30% 선을 넘어섰다. 한동안 주춤하던 이들의 성장세는 담뱃값 인상이 전격 시행된 2015년 다시금 탄력받았다.
지난 2015년 외국계 담배의 점유율은 41.7%. 국민 건강을 위한다며 한 갑에 2,500원짜리 담배 가격을 4,500원으로 올린 박근혜 정부의 사실상 간접세 인상이 외국계 담배회사들의 점유율 확대 효과를 낳은 셈이다. 최근 들어 이들의 점유율은 40% 안팎에서 조정받고 있으나 결국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젊은 층의 선호도가 높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양담배=비국민’이라고 몰아붙였던 시대에 숨죽이고 살았던 중장년층들은 그나마 국산 상표를 고수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청년층의 외국계 담배 선호도는 60%를 웃돈다. 편의점 매출에서는 외국계 담배를 찾는 비중이 80%에 이른다.
시간이 흐르면 이 비율이 국내 담배시장의 외국계 점유율로 굳어지는 것은 불문가지다. 한국의 담배 시장을 외국계가 점령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얘기다. 기호품의 소비를 두고 제삼자가 왈가왈부하는 게 타당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걱정부터 앞선다. 담배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담배는 국가 재정과 직결돼 있다. 농가 소득과도 관련이 깊고 고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외국계 담배회사들이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만큼 사회에 이바지하는지 살피는 소비자의 안목이 아쉽다. 고용도 미미하고 한국산 잎담배 구매 실적은 제로(0)에 가깝다. 사회 공헌에서도 외국계는 낙제점이다.
한국 담배 시장이 열린 이래 21년간 외국계 담배회사들이 사용료(로열티)와 배당으로 가져간 금액은 2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10년간 해외 송금한 수익금만 1조 7,343억 원에 이른다. 어떤 업체는 본국의 모기업에 2,189% 배당한 적도 있다. 이전가격 조정 등으로 보이지 않게 가져가는 돈도 적지 않다. 반면 사회공헌과 기부에는 극히 인색하다. 외국계 3사의 지난 10년간 기부액은 매출의 0.04%. KT&G의 20분의 1 수준이다. 사회공헌액까지 합치면 외국계 담배회사들의 한국사회에 대한 공헌은 KT&G의 50분의 1 안팎이다. 법인세도 한국기업보다 훨씬 적게 낸다. 한국인들이 현명한 소비자 집단이라면 소비자 압력 또는 선택이 요구된다.
외국계 담배회사가 판매하는 담배를 더 이상 ‘양담배’나 ‘왜담배’라고 부르며 경원할 대상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경계는 필요하다. 한국 시장에서 돈을 벌면서 한국 사회에는 인색한 기업이 젊은 층에서 압도적 선호도를 유지하고 있는 현실은 비단 담배 시장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생각이 없는 소비자는 ‘글로벌 호구’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국방부는 지난 2015년 말 군부대 충성마트(PX)에 외국계 회사의 제품 일부의 입점을 허용했다. 국제 소송 압력 등을 이유로 들었지만 군대에서 외국 담배를 판매하는 국제 사례는 흔치 않다.
아무리 외국계 담배회사의 압력이 강하더라도 입점 평가항목에 ‘사회 공헌도’를 포함했다면 능히 막아낼 수 있었을 텐데…. 궁금하다. 어느 쪽인지. 모르고 포함하지 않았다면 무능하고, 아는데도 평가 항목에서 제외했다면 검찰 수사 감이다. 최근에는 특별이익을 누리는 외국계 담배회사의 신상품에 대한 과세 여부를 놓고 정치권에서 설전이 붙었다. 마치 외국계회사의 대리인처럼 보이는 정치인도 적지 않다. 정부와 정치권이 무능하다면 결국 시장을 지키고 한국에서 거둔 막대한 이익을 한국에 남기지 않는 외국계 회사들의 행태를 고치는 일은 소비자의 몫이다. 담배와 관련된 가장 현명한 선택은 끊어 버리는 것이다.
시인 공초 오상순은 ‘나와 시와 담배’에서 ‘나와 시와 담배는/이음(異音) 동곡(同曲)의 삼위일체…’라며 시와 담배, 영혼을 노래했으나 현실 속에서는 그렇지 않다. 담배 연기는 영혼과 미래, 나라 경제를 갉아먹을 뿐이다. 흡연으로 인한 건강보험료 지급 등 간접 피해가 담배로 벌어들이는 세수를 웃돈다. 같은 담배라도 외국계 담배는 더더욱 영혼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 습관적으로 외국산 상품과 친숙해진다면 전자제품과 악기, 승용차까지 고가 제품도 외국산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종국에는 가뜩이나 좁디좁은 한국의 내수시장 자체가 외국계에 점령되고 산업 전체가 타격받을 수 있다. 1974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스웨덴 무역·산업부 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고(故) 군나르 뮈르달은 중남미 경제 쇠퇴의 원인을 ‘공통의 이익을 위해 단결·조직하기보다 개인주의화하고 외국산 제품을 경계하지 않는 습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마치 오늘날의 한국을 내다보고 한 말처럼 들린다. 금연하되 정 피워야겠다면 생각이 있는 흡연이 필요한 시대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