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What]욕받이 되거나 영웅 되거나...정치생명 가르는 '재난 대응'

■세계 지도자들 리더십 시험대 '자연재해'
'샌디' 대처로 재선 성공 오바마
동일본대지진 부실 대응으로
정치생명 끊어진 간 前 총리 등
지도자들에겐 위기이자 기회
트럼프 '하비'로 시험대 올랐지만
피해지역 휴스턴 방문 생략하고
미주리서 세제개혁 홍보 전념
"위로·공감 없다" 혹평 쏟아져

자연재해는 각국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드러내는 절호의 기회가 되곤 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 당시 만사를 제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며 재해 복구에 앞장선 모습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재선에 성공했다(가운데 사진). 반면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위기능력 부재를 드러내며 국민의 신임을 잃어 5개월여 만에 사임했다(위쪽).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당시 전용기에서 피해 지역을 내다보다 구설에 오른 조지 W 부시 전 미


“와우(Wow), 전문가들은 하비가 500년 만에 한 번 있을 홍수라고 한다! 우리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잘해나가고 있다!”

지난달 27일 밤(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린 트윗이다. 텍사스주를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로 이미 5명이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올린 이 트윗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31일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의 피해 복구를 위해 개인재산 100만달러(약 11억원) 기부를 약속하고 수재민 지원을 위해 60억달러(약 6조6,000억원)에 육박하는 긴급 예산 요청을 검토하는 등 재난 복구에 힘쓰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려 하지만 취임 이후 첫 국가적 재난을 맞아 보인 그의 행보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대규모 허리케인이나 지진·해일 등 이따금 세계 각국을 덮치는 자연재해는 정치인들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재난 대응을 진두지휘하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도자들은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지만 잘못 대처할 경우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 전임인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의 경우 지난 2012년 대선을 며칠 앞두고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를 재선 성공의 결정적 기회로 만들었다. 밋 롬니 당시 공화당 후보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오바마 전 대통령은 대선 일주일 전 샌디가 미 북동부를 덮치자 선거유세를 즉각 중단하고 피해 복구에 전력해 경합주에서 선전하며 재선을 이뤄냈다. 특히 ‘오마바 저격수’로 꼽히던 크리스 크리스티 당시 뉴저지주지사마저 그의 재난 극복 노력에 경의를 표하면서 재선 가도에 순풍의 돛이 달렸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전 칠레 대통령은 2010년 광산 붕괴 사고 당시 매몰광부 33명을 모두 성공적으로 구조해내며 지지율이 10%포인트 급등하기도 했다. 그는 해외방문 중이던 당시 라우렌세 골보르네 광업장관을 급거 귀국시키고 구조작업 전 과정에서 국민과 소통하며 지하 700m에 매몰된 광부 전원을 구조하는 기적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몇몇 지도자들은 미숙한 재해 대응으로 국민적 신임을 잃으며 때로 지도자 자리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2005년 초강력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늑장 대응해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그는 당시 피해 지역인 뉴올리언스를 곧바로 방문하는 대신 비행기 창문 밖으로 피해 지역을 내다보기만 하며 1,800명의 사망자와 900억달러의 재산피해를 초래했다는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자연재해에 정치생명의 발목을 잡힌 대표적 사례는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다. 간 전 총리는 당시 후쿠시마 원전사고 폭발사고가 일어난 지 며칠이 지나도록 대책본부도 꾸리지 못하고 피난민 대책도 제대로 세우지 못해 리더십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 그해 8월 사임했다.

최근 유고브 여론조사에 따르면 ‘하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이 적절했다는 응답은 39%, 부적절했다는 응답은 24%로 아직은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하지만 현지 언론들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당시 초기 여론이 부시 전 대통령에게 그리 부정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향후 트럼프 대통령의 위기대응 평가가 더 악화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지난달 29일 부인 멜라니아와 함께 피해 지역인 텍사스주를 찾은 그의 행보에 대해서도 대중의 반응은 비판적이었다. 미 남부 유력지인 디애틀랜틱은 “감정 고취만 있었을 뿐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공감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하비의 직접 피해를 당한 휴스턴 일대 방문을 생략한 채 코퍼스크리스티와 텍사스 주도 오스틴을 들르는 데 그쳤다. 코퍼스크리스티는 초기 허리케인 상륙지점 인근이지만 강풍 피해가 있었을 뿐이며 강우량은 지난달 30일까지 160㎜에 불과했다. 부인 멜라니아의 ‘킬힐’도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코퍼스크리스티 소방서에서 지지자들을 앞에 두고 선거유세 같은 홍보성 연설을 한 모습도 구설에 올랐다.

한편 ‘진정성 없는 방문’으로 비난받는 트럼프와 달리 직접 피해복구 작업에 뛰어들어 구슬땀을 흘리고 피해자들을 따뜻하게 포옹하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모습에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에서는 펜스 대통령이 ‘하비’ 이후 공화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로 주목받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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