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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맞불은 사실상 예고돼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27일(현지시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끔찍한(horrible) 한미 FTA를 재협상하거나 종료(terminate)하기를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7월의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는 “지금 한미 FTA 재협상을 하고 있다. 아주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트위터를 날리기도 했다. 이후에도 한미 FTA를 재협상으로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여러 번 밝혔다.
문제는 지난달 22일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서 개정 협상 요청을 했던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개정 협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만큼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하나만 남았던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협정을 독단적으로 결정 가능한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미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있는 반면, 협의 절차만 거치고 행정부가 결정할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미국은 헌법상 통상협정 체결 권한이 의회에 있다. 행정부는 의회로부터 신속히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무역촉진권한(TPA)’을 위임받아 실무협상에 나선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반적으로 통상권한이 미국 의회에 있지만 TPA를 통해 양자 무역협정 폐기는 행정부가 할 수 있도록 위임해 놓았고, 한미 FTA도 이행법률안을 통해 그렇게 돼 있다”고 해석했다. 이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폐기를 결정할 경우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한미 FTA는 자동 종료된다. 한미 FTA 협정문 24조5항도 ‘협정은 어느 한쪽 당사국이 다른 쪽 당사국에 이 협정의 종료를 희망함을 서면으로 통보한 날부터 180일 후에 종료된다’고 명시돼 있다.
미 의회의 ‘승인’ 혹은 ‘합의’ 없이는 폐기가 불가능하다는 해석도 만만치 않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미 FTA는 이행법률을 통해 협정문이 모두 국내법에 반영이 돼 있는데 폐기를 하기 되면 그 법안들도 자동적으로 폐기된다. 결국 의회 승인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라며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도 다음 주 의회에 공식 레터를 보내는 등의 ‘보여주기식’ 압박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통상당국은 “차분하고 당당하게 대응해나가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국익과 국격을 위해 당당하게 한미 FTA 협상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꾸준히 밝혀왔고 지금도 그 입장 그대로”라며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철저하게 대응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개정 협상은 시간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가뜩이나 미국이 쥔 공격 카드가 많은 상황에서 개정 협상마저 수세적 입장에서 시작될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북핵 문제가 고조되면서 안보 문제가 협상의 향방을 결정할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또 오는 10월 미 재무부가 발표하는 환율보고서를 비롯해 무역적자보고서, 철강 안보영향보고서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또 우리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쌀 개방과 서비스 시장 개방 등의 문제를 걸고넘어질 가능성도 크다.
반면 우리 정부는 공격과 방어 카드가 마땅치 않다. 그나마 2012년 시행된 통상절차법이 어느 정도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한미 교역의 고질적 문제인 반덤핑과 문재인 정부 철학에 맞춰 협정문을 중소기업 중심으로 바꾸는 요구 등을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안 교수는 “한미 FTA 초기 협상 당시에도 미국 측이 난색을 표해 반덤핑 문제를 협정문에 담지 않고 작업반으로만 남겨뒀다는 점 등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빨리 통상조직 정비를 마쳐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