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다시 찾는 제주

일제시대 격납고 '무지개 진지'로 구현 등
제주비엔날레 15개국 70개팀 작품 선보여

제주비엔날레가 열리는 알뜨르비행장 내 일제시대 전투기 격납고에 박경훈,강문석 작가가 2010년 제작한 일본 제로센 전투기 형상 앞에 옥정호 작가의 신작 ‘무지개 진지’가 설치돼 있다.
‘아래 들판’이라는 뜻의 ‘알뜨르’는 1920년대 일제가 중일전쟁의 전초기지로 마련한 활주로 겸 격납고 자리다. 1948년 제주 4·3사건 때는 수많은 양민들이 학살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 격납고 앞에 화려한 무지개색 진지(陣地)가 설치됐다. 박경훈·강문석 작가가 일본 해군의 제로센 전투기롤 날개 꺾인 실물 크기 철골구조로 형상화 한 작품 ‘기억’이 격납고 안에 자리 잡았다. 전쟁을 위한 진지는 원래 눈에 띄지 않는 국방색으로 만드는 엄폐용 구조물이지만 작가 옥정호는 어디서든 눈에 띄는 형광 무지개색 진지를 만들었다. 역발상을 통해 전쟁의 반대말인 ‘평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제주비엔날레가 열리는 알뜨르비행장에 대나무로 소녀상을 만들어 세운 최평곤의 ‘파랑새’.
흉물처럼 버려졌던 알뜨르비행장 일대가 예술공간으로 변신했다. 2일 개막한 ‘2017 제주비엔날레’의 무대가 되면서다. 올해 처음 열린 국제미술전 ‘제주비엔날레’의 주제는 ‘투어리즘’. 연간 100만 여명이 찾는 제주에서 관광은 제주 사회와 지역민의 일상에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만큼 이를 15개국 70팀의 현대미술가들과 함께 성찰한 자리다.

대나무와 나부끼는 천을 이용한 김해곤의 설치작품 ‘한 알’ 뒤로 멀리 삼방산이 보인다.
관광이 꼭 밝고 아름다운 곳만 찾아다니는 것은 아니다. 이곳 알뜨르비행장은 역사적 참상의 장소나 재난의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인 ‘다크(Dark) 투어리즘’의 공간으로 구성됐다. 동학 농민군의 죽창에서 착안해 쪼갠 대나무로 작업하는 최평곤은 9m 높이 소녀상을 만들었다. 소녀의 손에는 희망의 ‘파랑새’가 안겨 있다. 갑오농민 전쟁을 강렬하게 형상화 한 구본주의 조각, 알뜨르비행장의 강제노역을 주제로 한 최고팀의 ‘숭고한 눈물’, 중의적 의미의 철망 사이에 돌을 끼워 역사의 흔적을 느끼게 한 전종철의 작품 등이 아픔과 감동을 전한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총 12점의 자연 속 설치작품을 최고 3년 이상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주비엔날레는 알뜨르비행장을 포함해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 예술공간 이아, 저지리예술인마을, 서귀포시 원도심 등 제주 곳곳에서 열린다. ‘투어리즘’이라는 주제는 제주도립미술관에서 두드러진다. 미술관 진입로에 놓인 조형작품은 박금옥 기획자가 전국에서 모인 30여 작가들과 보름간 제주에 머물며 제작한 것으로 재선충 소나무를 열처리 후 활용해 예술이 불어넣는 새로운 생명력을 보여준다. 관광지의 환영문구 같은 박호은 작가의 ‘웰컴(WELCOME)’으로 관객을 맞는 성북아트커먼스의 ‘럭키새드픽쳐쇼’는 일상을 벗어나 일종의 쇼가 되어버린 관광산업의 의미를 다양하게 짚으며 대안적 해법도 이야기 한다.


제주비엔날레가 열리는 제주도립미술관에 설치된 성북아트커먼스의 ‘럭키새드픽쳐쇼’는 관광산업의 명암을 짚어본다.
코린 비오네는 관광명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거의 같은 곳에서 비슷한 사진을 찍는다는 점에 착안해 에펠탑,몽블랑 등 관광명소의 이미지 수백장을 겹쳐 보여준다. 초점이 흔들린 듯한 겹친 사진에서 천편일률로 흘러버린 관광문화에 대한 반성이 읽힌다. 작가 이원호는 300만원으로 제주에 땅사기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급등한 제주 땅값 때문에 고생했다. 관광산업이 제주의 가치를 끌어올렸으나 이곳이 터전인 제주 원주민들과의 갈등 또한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의 영상작품은 물질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의 괴리를 파고들었다.

코린 비오네의 ‘미, 히어, 나우(Me,Here,Now)’는 관광명소에서 찍은 사진들이 겹쳐놓으면 거의 일치하는 비슷한 사진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천편일률의 투어리즘을 꼬집는다.
강요배 등 제주 지역의 30여명 작가들이 그린 한라산 풍경화 60여 점을 폭 20m, 높이 8m의 벽 전면과 그 양쪽에 다닥다닥 붙인 ‘한라살롱’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제주 관광의 핵심이자 제주 문화의 중심인 한라산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각기 다른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제주비엔날레가 열리는 제주도립미술관에 설치된 ‘한라살롱’은 제주지역 화가들이 그린 한라산 풍경화 45점을 통해 한라산에 대한 시선들을 보여준다.
제주문화재단이 옛 제주대병원을 탈바꿈해 레지던시와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예술공간 이아도 볼거리다. 박진이와 협업해 ‘관홍지광’이라는 설치작품을 선보인 박선영 작가는 카지노호텔의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꽃장식 아르바이트의 경험을 반영했다. 기세등등한 붉은 꽃들은 더 화려하고 오래가게 하려는 목적으로 거세하듯 꽃술이 제거된 기형적이다. 우리의 관광 여행도 자칫 어긋난 부분이 없지 않나 돌아보게 한다.

제주의 자연풍광과 제주 역사 자체가 너무나 강렬하기에 그 어떤 예술작품도 그보다 더 눈길을 끌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역성과 국제적 경향을 두루 고려한 제주비엔날레의 첫 걸음은 기대를 모으기 충분하다. 비엔날레는 12월 3일까지.

/제주=글·사진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제주비엔날레가 열리는 예술공간이아에 설치된 박선영,박진이 작가의 협업작품 ‘관홍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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