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투자가들은 지난 8월 1조8,116억원을 순매도했다.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차익 실현 욕구를 자극한 것도 있지만 북한과 미국이 ICBM 발사를 둘러싸고 대치하면서 지난달 9일부터 5영업일 동안 1조4,257억원을 팔아치웠다. 11일에는 코스피 종가가 2,319.71까지 떨어지며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저가 매수세가 유입됐다. 17~24일 사이 외국인은 3,344억원을 사들이며 반전의 기미를 보였다. 코스피 역시 지난달 25일 2,378.51에 마감하며 회복세를 보였다. 북한 리스크가 과거와 마찬가지로 단기 악재에 그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달 18일 “한반도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됐지만 직접적인 무력 충돌 가능성은 낮다”며 한국 정부의 장기 국가신용등급(AA)과 단기 신용등급(A-1+)을 유지한 바 있다.
하지만 북한이 지난달 26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외국인 매수세는 다시 흔들렸다. 29일 외국인의 순매도금액은 2,640억원을 기록했다. 이어 5일 만에 제6차 핵실험까지 강행하면서 북한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재차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스닥 시장에서 관측되는 외국인의 매수 행진도 주춤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달 14일부터 이달 1일까지 코스닥 시장에서 4,508억원을 순매수했다. 미국과 북한의 기 싸움이 고조되면서 코스닥지수가 급락한 이후부터다. 이 기간 외국인투자가들은 정보기술(IT)과 제약 업종을 중심으로 사들였다. 전체 누적 순매수 금액(1조5,348억원)의 약 30%에 해당한다. 덕분에 코스닥지수는 5.36% 상승했다.
레드라인을 넘어선 북한의 도발에 대한 시장 충격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응에 달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북한의 첫 핵실험인데다 미국을 겨냥한 ICBM 탑재 수소폭탄 실험인 만큼 미국의 대응 전략 강도는 시장의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회의(7일), 북한 건국절(9일) 등 다양한 이벤트 결과도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김용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9월 첫째주 시장은 지뢰밭이 될 것”이라며 “투자심리 급락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혼조세를 보이던 채권 시장도 이번 북 핵실험에는 단기 충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이주열 한은 총재가 경기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북핵 위험을 지목한 만큼 외국인들의 매도세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북 핵실험을 예고한 앨러스테어 뉴턴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북한 리스크를 시장이 좀 더 심각하게 보게 될 것”이라며 “한국 국채는 약세(금리상승)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장 큰 문제는 자금 유출 우려다. 북한 리스크에도 매도만 했을 뿐 본격적으로 자금을 빼내 가지 않던 외국인에게 수소폭탄 실험은 자금 유출의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주식·채권 시장에서 외국인투자가들의 자금 유출 압력을 높이고 환율 시장에서는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한은은 정부와의 협의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락할 경우 외환보유액을 활용한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과 통화안정증권을 활용해 국내 금융시장에서 유동성을 조절하는 등 시장 안정화 조치를 할 예정이다.
다만 지정학적 리스크와 별도로 전 세계적인 펀더멘털 개선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미래에셋대우 WM리서치센터는 “북한 리스크 등 정치적·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부담되지만 글로벌 경제지표 개선, 기업 실적 상승 등 펀더멘털 개선이 이어지고 있어 글로벌 증시의 하락을 막아줄 것”이라며 “중기적 관점에서 국내 증시의 우상향 기조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흥국 투자의 대가’로 불리는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이머징마켓그룹 회장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리스크가 한국 증시에 치명적인 약점은 아니다”라며 “기업 이익 전망치에 집중해 투자를 결정할 시기”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