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왼쪽) 축구 대표팀 감독이 3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분요드코르 보조경기장에서 진행된 팀 훈련 중 선수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월드컵 단골손님으로서 자존심을 회복하느냐, 플레이오프로 밀려 가시밭길을 걷느냐, 월드컵 없이 치욕스러운 암흑의 5년을 맞느냐.
이 세 가지 갈림길에 선 한국 축구의 운명이 5일 자정(이하 한국시각) 시작될 한판에 따라 결정된다. 대표팀은 이날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분요드코르 스타디움에서 우즈베키스탄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 예선 A조 최종전(10차전)을 치른다. 승점 14(4승2무3패·골득실 +1)의 A조 2위에서 3위 시리아(골득실 +1)에 2점 차로 쫓기는 한국은 4위 우즈베키스탄(승점 12·골득실 -1)을 이기면 무조건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룬다. 그러나 비기거나 지면 같은 시각 열리는 이란-시리아전(이란 홈경기) 결과를 살펴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한다. 우리가 비길 경우 시리아가 비기거나 지면 우리는 조 2위로 본선에 직행하지만 시리아가 이겨버리면 우리는 플레이오프로 밀려난다. B조 3위를 꺾은 뒤 북중미 4위 팀까지 잡아야 본선 티켓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우즈베키스탄에 지면 본선 직행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다. 플레이오프라도 가려면 시리아가 비기거나 지기를 바라야 한다.
신태용 대표팀 감독은 지난 2일 타슈켄트 입성 후 모든 전술 훈련을 비공개로 진행하며 최종전 준비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무실점으로 이기겠다”는 각오다. 대표팀은 경기가 열릴 분요드코르 스타디움 잔디를 4일 경험하며 마지막 담금질을 마쳤다. 지난달 31일 이란과의 홈경기에서 문제가 됐던 서울월드컵경기장 잔디보다 관리 상태가 낫다는 반응.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내는 일만 남았다.
◇무승부는 잊어라=시리아가 최근 카타르를 3대1로 꺾는 등 상승세라고는 해도 객관적 전력상 이란 홈구장에서 승리를 얻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이란은 24위, 시리아는 80위다. 한국은 비겨도 본선에 직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러나 처음부터 무승부를 목표로 들어갔다가 경기가 꼬이는 모습을 세계 축구사에서 우리는 숱하게 목격해왔다. 신태용호의 방향성도 지지 않는 축구가 아닌 이기는 축구가 돼야 할 것이다.
한국은 우즈베키스탄과의 역대 전적에서 10승3무1패의 절대 우세를 지키고 있다. 지난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0대1로 진 게 유일한 패배다. 물론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는 1승2무로 고전했지만 절체절명의 현재 상황을 잊고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라는 자신감으로 임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은 “이란전을 준비하면서는 팀 전체가 수비적인 측면에 집중하는 경향이 많았다”며 “그 틀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이번에는 좀 더 완성도 높은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이면 때려라=한국은 이란전 원정·홈 180분간 골문으로 향하는 유효슈팅 하나를 날리지 못했다. 두드려야 열리는 법인데 완벽한 과정을 만드는 데 치중하다가 슈팅 타이밍을 놓치는 일이 많았다. 일단 슈팅이 나와야 문전에서 의외의 쉬운 골 기회를 기대해볼 수도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을 무조건 이겨야 하는 입장이다. 이겨야만 이란-시리아전 결과에 따라 2위로 올라갈 수 있다. 따라서 이판사판으로 공격에 열중할 확률이 높다. 이럴 경우 우리로서는 침투할 공간이 열려 역습으로 좋은 기회를 만들 여지가 많아진다. 손흥민(토트넘)의 스피드에 기대가 쏠리는 이유다. A매치 6경기 연속 무득점 중인 손흥민은 지난 2015년 1월 아시안컵 8강에서의 좋은 기억을 되살리려 하고 있다. 당시 손흥민은 우즈베키스탄 골문에 혼자 두 골을 꽂아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한편 우즈베키스탄 주장 오딜 아흐메도프는 4일 FIFA 홈페이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한국전은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다. 이기지 못하면 우리는 이 나라에서 축구를 끝내야 할지도 모른다”며 “4년 전과 같은 상황을 피하고 월드컵에 직행하고 싶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4년 전 한국에 골 득실에서 뒤져 월드컵 본선 직행에 실패한 우즈베키스탄은 플레이오프에서 요르단에 져 사상 첫 본선행이 좌절됐다. 우즈베키스탄은 K리그 FC서울에서 뛰었던 세르베르 제파로프와 현재 중국슈퍼리그 베이징 궈안 소속의 이고르 세르게예프가 투톱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형님들을 믿어라=3년 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단 38세 ‘맏형’ 이동국(전북)은 이란전에 후반 44분에야 투입됐다. 뭔가 보여주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경기 후 이 용병술을 두고 비판도 많았다. 이번에는 이란전보다는 많은 시간을 보장받을 것으로 보인다. A매치 104경기 33골의 이동국은 이 중 4골이 우즈베키스탄전 득점이다. 4골 중 마지막 득점이 5년 전 일이기는 해도 그라운드에서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의 역할이 절실한 대표팀이다. 대표팀의 또 다른 ‘형님’ 염기훈(34)은 “(이)동국이 형이 선수들을 불러 이란전은 지나간 일이니 모든 것을 잊고 남은 한 경기에 힘을 쏟아내자고 말했다. 어린 선수들이 든든하게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야전사령관 기성용(스완지시티)의 출전은 경기 직전에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상에서 회복한 기성용은 엔트리에서 제외됐던 이란전과 달리 최종전을 앞두고는 모든 훈련을 정상적으로 소화하고 있다. 다만 실전 감각 회복이 관건이라 신 감독은 마지막까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