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공정위 시정명령 집행정지 해달라” 퀄컴 요청 기각…IT 갑질 관행 깨지나

“공정위 시정명령 멈출 수 없다”
5G 통신 상용화 앞두고
삼성·LG 등 반색
애플·인텔 등 글로벌 IT기업도 반색

서울고법 행정7부(윤성원 부장판사)는 4일 퀄컴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효력정지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퀄컴은 당장 모뎀칩 등 이동통신 기술·부품의 계약 관행을 바꿔야 할 처지가 됐다. 삼성전자·LG전자는 물론 애플·인텔 등 “퀄컴이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갑질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던 정보기술(IT) 기업들은 환영 분위기다. 더 나은 계약 조건을 토대로 5세대(5G) 이동통신기술 상용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재판부는 이날 퀄컴의 신청을 기각하며 “시정명령 성질과 내용, 본안청구의 승소가능성 같은 여러 사정을 고려하면, 신청인이 제출한 자료만으로 시정명령 때문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는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시정명령 처분의 효력을 긴급히 멈춰야할 필요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퀄컴이 IT 기업들과의 맺는 계약은 시장 경쟁을 해치는 불공정 행위라며 시정명령과 함께 사상 최대 과징금 1조300억원을 퀄컴에 부과했다. 공정위는 시정명령에서 퀄컴이 칩 제조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을 때는 판매처나 칩셋 사용 권리를 제한해서는 안 되며 휴대폰사에도 부당한 계약 조건을 강요하지 말도록 했다.

퀄컴은 휴대폰 반도체 칩, 특히 통신용 모뎀 칩 분야에서 세계적 독점기업으로 커왔다. 2세대(2G) 코드분할방식(CDMA)부터 3세대(3G) 광대역코드분할다중접속(WCDMA), 4세대(4G) 롱텀에볼루션(LTE)까지 이동통신기술의 발달 뒤에는 모두 퀄컴의 기술이 있었다. 하지만 퀄컴은 그러한 지위를 이용해 휴대폰을 만드는 삼성전자·LG전자·애플 등에 칩 공급을 볼모 삼아 부당한 라이선스 계약과 자사제품 사용을 강요한 혐의를 받았다. 공정위는 인텔·브로드컴·엔비디아 등과 같은 반도체 칩 제조사들의 공정한 경쟁도 방해했다고 판단했다.


퀄컴의 신청을 기각한 재판부의 논리는 “시정명령은 공정한 계약을 촉구하는 내용인만큼 퀄컴이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문구로 요약된다. 퀄컴이 자사 주장처럼 공정 계약 의무를 준수해왔다면 시정명령에 따른다 해도 큰 피해를 볼 일이 없다는 얘기다. 퀄컴은 2G~4G에 걸쳐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SEP)를 최다 보유한 기업이다. 공정위는 퀄컴이 SEP에 관한 공정거래 확약(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을 지켜야한다고 요구했으며 퀄컴은 불복 소송을 제기하면서 FRAND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FRAND는 업계 표준특허를 다수 보유한 기업이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조건’으로 다른 기업과 거래해야 한다는 원칙아래 만들어진 가이드라인이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 “공정위의 시정명령 자체는 FRAND 확약을 준수하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퀄컴이 FRAND 확약을 계속 준수하고 있다면 라이선스 대상특허의 목록, 실시료(로열티) 산정 방법 등이 특정된 계약안을 기초로 통상적인 업계 관행과 선의에 따라 협상하더라도 결정되는 실시료는 종전과 큰 차이없는 수준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퀄컴은 시정명령 효력을 즉각 중지하지 않으면 사업구조의 근본·전면적 변경으로 손실이 발생될 것이라 주장하지만 구체적인 손해 발생 가능성과 그 규모에 관하여 실증적으로 소명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공정위 시정명령 효력정지 신청 기각은 본안 소송 결과와는 관련없다. 퀄컴이 제기한 본안 소송은 공정위의 시정명령과 과징금 1조300억원을 아예 취소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IT 기업들은 퀄컴이 당장 시정명령 효력을 막지못한 것만으로도 큰 이득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애플·인텔·미디어텍은 공정위쪽 보조참가인으로 소송에 참여해 이번 신청 사건에서 피해를 적극 호소했다.

IT 기업들은 올해와 내년을 5G 상용화의 기점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퀄컴이 불공정한 계약 관행을 유지하면 5G 통신기술 시장이 퀄컴쪽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기업들의 주장이다. 당장 삼성전자 등은 내년 2월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서 5G 기술을 시연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애플을 대리하는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본안 소송은 최소 2020년을 넘겨야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아볼 수 있을 듯하다”며 “산업계에 미치는 실제 영향력을 놓고보면 이번 신청사건 기각이 본안소송보다도 무게감이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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