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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데뷔 때부터 대학로에서 주목받았던 장 대표지만 연극계에선 2010년 영화판에서 돌아온 이후 그가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스크린에 걸리지도 못했던 영화와 달리 ‘여기가 집이다’(2013), ‘환도열차’(2014), ‘햇빛샤워’(2015), ‘불역쾌재’(2016) 등 무대에 올린 작품들이 연달아 히트했고 2013년 대한민국연극대상 대상, 2014년에는 동아연극상 희곡상 등 내로라하는 상을 휩쓸었다.
그런 그가 신작 1편, 재연작 1편을 들고 돌아왔다. 2년 만에 재연하는 국립극단의 ‘미국 아버지’(9월 6∼25일 명동예술극장)는 극본과 연출, 신작 ‘옥상 밭 고추는 왜’(10월 13∼29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는 극본을 맡았다.
국립극단을 통해 2년만에 재연하게 된 ‘미국 아버지’는 2004년 5월 이슬람 테러단체 알카에다에 의해 공개 참수된 첫 희생자 미국인 닉 버그 가족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당시 닉 버그의 아버지 마이클 버그는 아들을 잃은 뒤 개인적 고통을 넘어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지 세계인이 반성하고 고민해야 할 점을 적은 A4 두 장 분량의 편지를 영국의 전쟁 반대 단체에 보냈는데 편지 내용은 이역만리 한국 땅에 있던 한 극작가에게 큰 충격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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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버그의 참수 사건과 마이클 버그의 편지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그 외의 이야기는 모두 허구로 채워넣었다. 사회 활동가로 변모한 마이클 버그와 달리 그를 모델로 한 빌은 끝내 살아남지 못한다. 극의 마지막엔 두 사람을 대비시키며 관객을 사유의 공간으로 이끈다. 그는 “마이클 버그라는 사람이 어떤 힘으로 그런 편지를 쓰고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테러, 자신의 삶을 견디는지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장 대표는 “사건의 특성상 호소하고 격앙되기 쉽지만 이제는 호소와 격앙만으로 이 사건을 다룰 시기는 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번 무대는 호소, 과장, 반복을 걷어내고 신자유주의, 전쟁 등에 대해 정확하게 우리가 무엇을 사유해야 할지 전달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김광보 연출에게서 오는 전화는 주로 놀랍습니다. 현란하고 미학적인 포인트를 묻는 게 아니라 아주 기초적인, 그러나 행간에 숨겨진 팩트를 포착해 질문을 하는 겁니다. 사실 배우들을 움직이는 근거는 구체적인 팩트죠. 헛구역질하는 장면 하나가 나와도 그걸 왜 하는지 파고들어 연출하는 겁니다. 행간을 파악하는 건 관계를 파악하는 건데, 관계를 파악하면 자연스럽게 행간이 생기고 관객에게 상상과 사유의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죠. 김 연출은 놀라운 경지에 이른 거죠.”
‘옥상 밭 고추는 왜’는 서울 변두리 동네의 한 연립빌라 옥상의 밭에서 키우는 고추를 몰래 따 간 이웃과 벌어지는 다툼을 그린 작품이다. 실제 장 대표가 살던 연립 옥상 고추밭에서 고추 싹쓸이 사건이 벌어졌고 이에 착안해 인간관계의 도덕과 윤리 의식의 충돌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연극의 소스를 세상에서 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대로다. 장 대표는 “우리나라는 개인이 없는 집단을 공동체라고 믿는 보수주의자들, 개인이 되지 못한 공동체주의자들이 망쳐가고 있는 사회라는 표현(김규항)을 본 적이 있다”며 “도덕과 윤리가 거대하게 충동하는 문제들이 생활 곳곳에서 보여주는 시기인 만큼 필요한 얘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매년 한 편의 신작을 내놓는 그지만 올해는 극단의 작품 활동을 단기와 장기 트랙으로 나눠 즉각적으로 사안을 담아내는 연극을 시도해볼 계획이다. 극단 공동창작으로 11월에 선보일 이 작품의 가제는 ‘버려야 할 욕망과 진화시켜야 할 욕망’이다. 장 대표는 “극단에서 공연을 만들던 중 연출이 갑자기 사라지는데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단원들이 느끼는 다양한 욕망을 꺼내볼 계획”이라며 웃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