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외곽팀' 'KAI 방산비리' 잇단 구속영장 기각…檢 수사 차질 빚나

법원 "도주·증거인멸 염려 없어"
양지회 전·현직 간부 영장 기각
KAI 전·현직 임원도 모두 기각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인터넷 여론 조작에 나선 혐의를 받고 있는 국정원 사이버외곽팀 팀장을 상대로 청구한 구속영장이 8일 기각됐다. 사이버외곽팀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영장 기각에 강하게 반발했다./연합뉴스
‘국가정보원 대선 여론조작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첫 구속영장이 8일 기각됐다. 국정원에서 자체 파악한 외곽팀이 최대 30개에 달하고, 혐의를 받고 있는 전·현직 팀장급 인물만 총 48명이 되는 상황에서 검찰 수사가 힘을 잃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오민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새벽 검찰이 공직선거법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양지회 전 기획실장 노모씨를 상대로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오 판사는 “범죄 혐의는 소명되나 수사 진행 경과 등에 비춰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 보기 어렵다”며 사유를 설명했다. 법원은 노씨 주도로 국정원 퇴직자 모임인 양지회가 회원 수십명을 동원해 인터넷 여론조작 활동을 펼친 정황은 인정한 것으로 보이지만 구속을 해야 할 필요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국정원 자체 조사로 내부 업무 자료가 이미 확보됐으며 검찰 추가 수사에서 증거가 상당한 수준으로 발견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양지회 현 사무총장 박모씨를 상대로 청구한 영장도 마찬가지로 기각됐다. 박모씨는 검찰 압수수색을 앞두고 자료를 숨기거나 삭제해 증거은닉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법원은 박씨가 국정원이 양지회에 지원한 예산 내역 등 업무 자료를 자기 차에 숨기는 등 일부 자료를 은폐한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해당 자료가 노씨가 주도한 사이버외곽팀 활동과 관련된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은 강하게 반발했다. 노씨 신병을 확보하면서 수사를 다른 외곽팀장으로 확대하려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 검찰은 기각 결정과 관련해 “양지회 회원들은 퇴직 후 민간인으로 신분이 바뀌었음에도 오히려 국정원 현직 직원들보다 더 노골적으로 활동했다”며 “다른 영장 발부 사례들과 비교했을 때 법원의 발부 기준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장 재청구는 쉽지 않아 보인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면서도 범죄사실이 소명됐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앞으로 수사를 어떤 방향으로 진행할지 고심하는 모습이다.

한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방산비리를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이용일 부장검사)도 제동이 걸렸다. 채용비리 혐의(업무방해 등)를 받고 있는 KAI 이모 경영지원본부장(상무)을 상대로 한 구속영장이 이날 새벽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주요 혐의인 업무방해죄의 보호법익, 회사 내부의 신입사원 채용 과정 등에 비춰 피의자의 죄책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점, 기본적 증거자료가 수집된 점, 주거가 일정한 점을 종합하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기각 사유를 놓고 법조계에서는 군 고위 장성, 지자체 관계자, 언론인 등 유력인들이 청탁한 만큼 법원이 상무급인 이 본부장을 실행 주체로 볼 수 있느냐가 쟁점이 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법원은 지난달 4일에도 부하 직원이 협력업체서 받은 뒷돈 일부를 상납받은 혐의를 받는 KAI 전 생산본부장 윤모(59)씨 구속영장도 발부하지 않았다. 검찰은 원가 부풀리기·분식회계 등 경영비리 의혹과 관련해 7월 14일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으나 청구된 전·현직 KAI 임원들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돼 수사가 방향을 잘못 잡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지형인턴기자 kingkong93@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