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싱가포르예술축제의 초청작으로 싱가포르 빅토리아 극장에서 공연된 ‘트로이의 여인들’ 중 일부. 헤큐바 역의 김금미가 전쟁에서 진 트로이 왕비의 한을 열연하고 있다./사진제공=국립극장
“마치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보는 듯했어요”.지난 7일 싱가포르예술축제(SIFA, Singapore International Festival of Arts)의 초청작으로 공연된 국립창극단 레퍼토리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을 관람한 대학생 에드윅(23) 씨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는 “한국말을 전혀 모르지만, 자막을 보지 않고 한국말로 듣는 게 더 느낌이 잘 전달됐다”며 “(판소리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고통, 아픔을 받는 느낌은 그동안의 뮤지컬, 오페라에서 볼 수 없던 것이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예술축제의 예술감독이자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옹켕센(54)이 연출한 ‘트로이의 여인들’의 현지 반응은 뜨거웠다. 안숙선 명창의 고혼(孤魂, 넋을 위로하는 영혼의 목소리를 뜻함)과 함께 극이 끝나자, 싱가포르 빅토리아 극장은 500명의 관객의 환호로 가득 찼다.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500석의 빅토리아 극장을 공연하는 3일간 모두 전석 매진하는 기록을 달성했다. 싱가포르에서 구독률 1위 신문인 ‘더 스트레이트 타임즈(The Strait Times)’에서도 ‘순수한 감정의 뮤지컬(A musical of pure emotion)’라는 기사를 통해 “트로이의 여인들은 황홀하고 잊히지 않는다(mesmerising, haunting, unforgettable)”며 “한반도의 위안부 역사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비극이 전달됐다”고 극찬했다.
지난 7일 싱가포르예술축제의 초청작으로 싱가포르 빅토리아극장에서 공연된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절세미인 헬레네 역의 김준수(오른쪽)가 그리스의 왕 메넬라우스 역의 최호성에게 안겨있다. /사진제공=국립극장
‘배우들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다. ‘미의 상징’인 헬레네 역을 소화한 김준수(26·남)는 몰려드는 현지 관객들의 사진 요청에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그는 “이렇게 많은 해외 분들이 우리 소리를 들으러 찾아와 주실 줄 몰랐다”며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관객분들이 알아봐 주시고 사진을 찍자고 해주시니 정말 감사했다”고 밝혔다. 그와 사진을 찍은 관객 리니탄(44) 씨와 조린(30) 씨는 “그리스의 고전 이야기를 한국의 고전 음악으로 담은 현대적인 작품”이라며 “특히 남성 헬레네의 열창은 자신의 마음을 울렸다”고 말했다. 해외의 공연 담당자들의 관심도 이어졌다. 이미 내년 5월과 6월 영국 브라이튼과 런던에서 이틀씩 초청 공연을 하기로 확정된 데 이어 그리스, 스페인, 일본, 호주, 폴란드, 네덜란드의 연극 축제 관계자가 이번 공연을 관람했다. 국립극장 관계자는 “뮤지컬의 본산인 영국에서 한국의 창극이 공연되는 것은 큰 성과”라며 “19년 공연을 위해 9일 오전에는 그리스 아테네 오나시스 문화재단의 카티야 아르파라 감독과 만남을 가졌다”고 귀띔했다.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이번 공연에 대해 “창극을 그저 이국적인 아시아의 예술 중 하나로 평가하는 유럽과는 달리 아시아에서는 창극 본연의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다”며 “한국의 콘텐츠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는 우선 아시아에서 성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우리피데스가 기원전 415년에 쓴 동명의 작품을 바탕으로 판소리의 거장 안숙선 명창이 작창한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은 싱가포르 공연 이후 오는 11월22일부터 12월3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재공연된다. 이어 2018년 5월26일부터 이틀간 영국 브라이튼의 애튼버러센터, 6월2일부터 이틀간 런던 사우스뱅크센터 퀸엘리자베스홀에서 영국 현지 관객을 만난다. /싱가포르=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지난 7일 싱가포르예술축제의 초청작으로 싱가포르 빅토리아 극장에서 공연된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사진제공=국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