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에 이렇다 할 성장동력 산업, 미래 먹거리 산업이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우리 경제를 견인하던 자동차, 철강, 화학, 조선 산업의 부진이 뼈아프게 다가오고 있다. 경제 성장동력이 꺼질지도 모른다는 시그널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이 상황에 대처해야 할까.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 경제가 동력을 잃지 않으려면, 시대적 명분과 실리가 조화를 이룬 경제 운용을 해야 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티뷰는 ‘발에 의한 투표(voting by feet)’라는 개념을 가지고 거주지 선택에 따른 지역공동체 간 각종 차이를 설명한 바 있다. 소비자들은 시장에서 상품을 선택하듯, 자신이 원하는 지역을 골라 자유롭게 이동을 한다. 그렇게 되면 많은 소비자들이 살기 원하는 지역은 이주해 들어오는 수요는 많아지고 이주해 나가려는 소비자들은 줄어든다. 자연스럽게 부동산 가격이 뛰고 세금이 잘 걷히고 거주 환경 개선이 이루어지는 등 상황이 좋아진다. 거꾸로 소비자들이 외면하는 지역은 주민 유입이 줄고 유출이 늘어나면서 부동산 수요가 감소하고 공급은 많아진다. 당연히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거주 환경 개선도 어려워진다. 지역별로 집값 차이가 나는 건 이처럼 ‘발로 하는 투표’에 의해 결정되는 측면이 강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각 지방자치 단체는 소비자들로부터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이 같은 지자체 간의 경쟁이 많은 지역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동력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실현되는 부동산 가격은 발로하는 투표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지역별로 상당한 편차를 보인다는 점에서 이 같은 결과는 투표의 결과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주거비 상승 억제라는 목표만을 부각시키는 건 한 쪽 만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정부가 강력한 부동산 억제 정책을 내놓았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키겠다는 것이 정부의 주요 목표로 보인다. 과열된 지역으로의 유동성 유입을 차단하는 대출억제가 정부 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시장 반응이다. 일단 진정되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특히 우려되는 건 이미 우리 경제 내에서 부동산 경기가 식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건설투자는 전기 대비 6.8%의 상승세를 보였지만, 2분기에는 전기 대비 1% 상승률을 기록해 증가율이 0에 가까워졌다. 건설투자 증가세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선 강력한 부동산 가격 억제책이 건설경기 부진으로 이어져 경기 회복세를 저하시킬 가능성이 높다. 사실 최근 우리 경제 상황은 안심하기 힘든 국면에 놓여 있다. 2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2.7%를 기록했지만, 1분기 2.9%에 비하면 회복세가 꺾이고 있다. 전기대비 성장률로 보아도 2분기 성장률은 전기 대비 0.6%였지만, 1분기에는 그 비율이 1.1%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지표 상으로 보면 전년 동기 대비로나 전분기 대비로나 경기가 꺾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6월 산업생산은 전월대비 0.1% 감소했다. 제조업생산도 전월대비 0.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제조업 부문별 생산능력지수를 보면 산업별로 명암이 확연하게 엇갈리고 있다. 2010년 수준을 100으로 놓고 볼 때, 반도체산업의 생산능력지수는 무려 256.5 였다. 그러나 조선업 등 운송장비업은 105.1, 섬유업은 92.8에 불과했다. 특히 우려되는 부분은 자동차산업이었다. 자동차산업의 생산능력지수는 99.6으로 100 이하로 주저앉았다. 자동차 산업이 어떤 산업인가. 한때 우리 증시에서 유행했던 ‘전·차군단’에서 ‘차’는 자동차 산업을 의미했다.‘전’자와 자동‘차’ 산업이 우리 경제와 증시를 견인한다는 점에 착안해 만들어진 신조어였다. 그런데 바로 그 자동차 산업이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사드 관련 중국의 보복적 조치에다가 극심한 인건비 상승으로 힘이 빠지고 있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한국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2010년 말 우리나라 기업 중 8곳은 시가총액 기준 세계 500위 안에 들었다. 그러나 2017년 6월 말에는 그 중 6개 기업이 그 리스트에서 탈락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개만 남고,6개가 500위 밖으로 밀려났다.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현대자동차, 철강 산업을 대표하는 포스코, 화학산업을 대표하는 LG화학, 그리고 조선산업을 대표하는 현대중공업 등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해당 업종 대표 주식들의 시가총액 순위가 하락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이 꺼지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움을 지울 수 없다.
다른 지표들도 이와 비슷하다. 2분기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1.6%로, 2009년 1분기 66.5% 이후 최저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거의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수준으로 회귀한 상황이다. 반면 반도체 산업의 나홀로 약진은 여러 측면에서 확인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2분기 수출물량지수는 393.97을 기록했고, 6월 전자산업 수출기여율도 전체의 65.3%를 차지했다. 가히 반도체 착시라고 부를 만한 상황이다. 반도체 산업 덕분에 이 정도 버티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편중 현상은 위험천만하다. 반도체 산업을 제외하면 우리 경제에 이렇다 할 성장동력 산업이나 미래 먹거리 산업이 눈에 띄질 않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반도체 산업마저 주저앉으면 이제 우리 경제가 기댈 언덕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경제의 취약성이 큰 우려로 다가올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 법인세 인상, 인건비 증가, 전기요금 상승 가능성이 커지고, 강력한 건설경기 억제책이 나오고 있다. 경제상황과 경제정책이 따로 노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경제 운용에선 형평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효율의 가치도 대단히 중요하다. 경제운용의 효율성이 담보돼야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 승리하고 좋은 성과를 내 그 결과물을 골고루 나눌 수 있다. 이 두 가지 목표는 어느 한 쪽을 앞세우기보단 상호 조화를 잘 모색해야 달성이 가능하다. 명분에 집착하면 실리를 챙길 수 없다. 형평과 효율, 그리고 명분과 실리가 잘 조화되는 경제운용 체계가 정착되기를 기대해 본다.
윤창현 교수는…
▲1960년 충북 청주▲1979년 대전고 ▲1984년 서울대 물리학과 ▲1986년 서울대 경제학과 ▲1993년 미 시카고대 경제학박사 ▲1993~1994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1995~2005년 명지대 경영무역학부 교수 ▲2005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2012년~2015 한국금융연구원장 ▲현 서울시립대경영학부 교수 ▲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글_윤창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