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 헤일리(왼쪽 사진) 유엔 주재 미국대사와 류제이(오른쪽 사진) 중국대사가 11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신규 대북 제재 결의안 표결에서 손을 들어 찬성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은 당초 북한 원유공급 완전 차단 등 초강력 제재를 포함한 초안을 마련했으나 중국과의 줄다리기 끝에 제재 수위를 대폭 낮추기로 합의했다. /뉴욕=AFP·신화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1일(현지시간) 채택한 새 대북 제재 결의안은 미국이 지난주 제시한 초안에 비해 크게 후퇴한 ‘절반의 제재’로 평가된다. 새 제재안은 북측과 대화의 여지를 남기는 동시에 북의 추가 도발 시 초강력 제재를 예고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는 한편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동시에 받고 있다. 다만 폐쇄된 북한 경제에서 가장 민감한 석유가 제재 품목에 처음 포함됐고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9일 만에 속전속결로 중국·러시아 등이 모두 참여하는 제재안이 마련돼 국제사회의 엄중한 대북 인식이 반영된 것은 성과로 분석된다.
안보리는 이날 오후 뉴욕 유엔본부에서 전체회의를 열어 대북 석유공급을 30%가량 차단하고 북측 섬유제품 수출을 봉쇄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새 대북 제재 결의 2375호를 15개 이사국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제재 내용은 지난주 미국이 제시한 초안에서 크게 완화됐다. 우선 대북 원유와 석유제품을 전면 차단한다는 당초 계획이 30%로 크게 누그러졌다. 원유공급의 경우 기존 수출량인 연 400만배럴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선에 그쳤으며 연 450만배럴로 추산되는 휘발유 등 석유제품 수출은 55% 줄인 연 200만배럴로 축소됐다. 게다가 상징성이 컸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선전부 부부장이 제재 대상에 올랐다가 빠지면서 대북 압박 효과는 적잖이 김이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여행 금지와 자산동결 등의 제재가 가해지는 블랙리스트에는 박영식 북한 인민무력상 한 명만 올랐고 기관으로는 노동당 중앙군사위와 조직지도부·선전선동부 등이 추가됐다.
여기에는 거부권을 가진 중국·러시아가 대북 제재 초안에 강력 반발한 상황에서 미국이 안보리에서의 정면충돌을 감수하기에는 외교적 부담이 컸다는 점과 함께 아직은 북측과 대화를 모색할 수 있는 여건이라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안보리 회의 후 “미국은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면서 “북한은 아직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지는 않았으며 만약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한다면 나라의 미래를 되찾을 수 있다”고 밝혀 북측에 핵 동결과 대화 복귀를 촉구했다.
이번 제재안은 또 북측이 국제사회의 경고를 또다시 무시하고 추가 도발을 감행할 경우 맞게 될 추가 제재들을 초안을 통해 미리 선보임으로써 북측의 경각심을 높이는 효과를 낼 것으로 평가된다. 미 측이 중국·러시아에 양보하며 대화 신호를 보낸 상황에서 북한이 또 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 등의 도발을 감행하면 김정은에 대한 직접 제재와 석유 공급선 차단 확대 등이 곧장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대북 압박을 최대로 끌어올리지는 않았지만 북핵 및 미사일 개발의 돈줄은 이번 안보리 제재로 더욱 조여졌다. 기존 제재에서 수출이 전면 금지된 석탄에 이어 북측 주요 외화수입원인 직물과 의류 중간제품 및 완제품 등 섬유 수출이 전면 금지되면서 안보리는 연간 8억달러의 북측 수입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추산했다. 북한 노동자의 해외 외화벌이를 막기 위해 지난번 제재에서 신규 고용을 금지한 데 이어 이번에는 추가로 이미 고용된 근로자도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고용 연장을 불허하도록 해 대북 송금액이 2억달러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기도 했다. 북한은 전 세계 40여개국에 5만명 이상의 노동자를 내보내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초안에서 일부 후퇴했지만 대북 금수 품목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이면 공해상에서 검색을 시도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됐다. 북한과 합작 사업체를 설립·유지하는 것 역시 전면 금지돼 기존 합작 사업체는 120일 이내에 폐쇄해야 한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의 벽에 가로막혀 북한의 생명줄인 원유수출 전면 금지가 관철되지 못한데다 김정은에 대한 제재도 제외되는 등 미국이 애초에 의도했던 초강경 제재안이 물러진 상황에서 이번 제재안이 북한의 핵 개발을 중단시키고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