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에너지전환정책, 기술혁신에 초점을

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전력 생산기술 스마트화 통한
에너지시장 근본적 개혁 예고
脫원전 장기예측 한계 감안을



에너지 부문의 의사결정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모든 국민이 수요자라는 공공재적 특성과 시장체제 효율성 간의 조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에너지 시장은 고갈성 자원 독과점 등으로 시장 실패의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높다. 주기적인 석유파동과 환경오염 증대 추세가 대표적 사례다. 이에 정부의 공공개입이 용인됐다. 그러나 공공개입 역시 정부 실패로 귀결된 경우가 많다. 가격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대표적 사례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기후변화 문제의 대두로 시장 실패와 정부 실패의 동시유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선진국들에서는 에너지 정책의 변화 추세가 가속화하고 있다. 개별 에너지원별 대책보다 국가 에너지시스템의 동태적 합리화와 국익 기여도를 중시하는 에너지전환(transition) 정책의 도입이 일반적인 추세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탈(脫)원전 논란도 이런 방향에서 정리되기 바란다.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찬반 주장 모두 일정 부분 비과학적이기 때문이다. 우선 장기 경제성장률 등의 불확실한 수요, 투자 결정 요소들과 함께 수많은 기술혁신 요인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았다. 어쩌면 정확한 반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확하다. 이러한 장기 예측의 한계를 감안해 에너지경제학 등 관련 국제학계는 장기 시장 예측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기술 예측으로 바람직한 산업 구도의 변화 추세를 먼저 설정하고 그 달성 과정을 정책 근간으로 삼는 것을 합리적으로 본다. 특히 최근에는 석유 업계에서 시작돼 에너지 시장의 근본적 개혁을 예고하는 ‘스마트’화, 대형 데이터 분석 능력의 향상, 그리고 자동화라는 세 가지 에너지 기술혁신 추세를 반영하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첫 번째 추세는 스마트화다. 현행 저유가 시장을 초래한 셰일오일·가스 개발은 수평 채굴, 고압 살수 등 생산기술의 스마트화에 근거한다. 더욱이 이들 기술은 이제 전력산업 개혁으로 연결되고 있다. 즉 기술의 스마트화로 전력산업의 경직적인 ‘규모의 경제’ 신화를 깨고 소형-분산 신재생전력 경쟁력 확보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특히 신재생 확산에 필수적인 ‘마이크로그리드(소규모 지역전력 자급자족 시스템)’와 관련한 복잡성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두 번째 기술혁신은 대형 데이터 분석 능력의 향상이다. 당초 석유 탐사·생산 비용 절감을 위한 수치 분석 능력의 고도화는 생산계획 준비 기간을 대폭 단축해 30%대의 투자비 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그 결과 석유산업은 이제 과거의 기록 분석으로 미래의 고장 확률 계산이 가능한 ‘예방 정비’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활용한다면 분산형 전력의 최대 약점인 생산의 간헐성 문제 극복과 사고 방지가 가능할 것이다. 끝으로 로봇 활용 등으로 심해저의 고난도 석유 생산 효율 향상에 기여한 자동화 추세는 이제 전력산업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데이터 분석 능력 제고와 결합한 자동화 추세는 스마트 전력계량기의 활용으로 소비자가 주도하는 전력공급체계의 구성을 촉진할 것이다. 따라서 실시간으로 소비자 선택수준 파악을 통해 신재생전력산업은 공급 신뢰성을 대폭 강화할 수 있다. 한마디로 경직적 에너지 시장에서도 기술혁신으로 소비자 선택 강화와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 이는 전력 등 에너지 산업이 제4차 산업혁명의 주역이 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ance) 극복을 통한 신기술과 기존 에너지 체계의 조화, 그리고 여기에 소요되는 적응비용의 최소화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은 정확한 기술 예측으로 향후 40~60년에 걸친 장기적이고 동태적인 ‘과학적 예측’을 완성하고 ‘느긋한’ 에너지 전환 정책 구성에 중점을 둘 때다. 이에 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부족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동원 가능한 집단지성을 모두 활용해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기술 예측 사업을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비과학적인 탈원전 논쟁은 이제 그만 잊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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