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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지난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벤허’에서는 스펙터클을 기대했다가 뜻밖의 밀도 높은 드라마를 만났다. ‘프랑켄슈타인’으로 대형 창작 뮤지컬의 블루칩이 됐던 왕용범 연출은 세계 어디서도 무대화에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영화를 완성도 높은 무대 언어로 풀어내며 명실상부 한국 창작 뮤지컬의 대장주로 입지를 굳혔다.
이야기는 서기 26년, 로마의 장교가 된 친구 메셀라와 예루살렘 귀족 벤허가 재회하면서 시작된다. 벤허가 로마의 편에 서달라는 메셀라의 요구를 거절하자 메셀라는 벤허 가문에 반역죄를 뒤집어씌우고 벤허는 로마 함선의 노예, 어머니와 여동생은 죄수가 된다. 그러나 노예선에서 로마 장군 퀸터스를 구한 벤허는 그의 양자가 되며 금의환향하고 메셀라와 로마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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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명장면들을 무대화한 데에는 빛나는 아이디어, 군더더기 없는 연출이 힘을 발휘했다. 전차 경주 장면은 실물 크기의 구체관절 말 8마리를 원형 회전 무대에 올려 만들어냈는데 압권은 무대 뒤로 원형 스크린을 설치해 슬로모션 장면으로 연출한 점이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규모의 미학 대신 두 인물의 감정 연기에 몰입하게 된다. 해상 전투 장면에서 조악한 전면 스크린 영상은 몰입을 방해했지만 벤허가 바다에 빠진 로마 장군 퀸터스를 구출하는 장면은 이를 만회하기에 충분했다.
뮤지컬 벤허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원작 소설과 영화가 가졌던 뚜렷한 종교적 색채를 비종교인 관객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풀어내느냐였다. 왕 연출이 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의 핵심 장면을 골고타 언덕으로 향하는 예수와 벤허의 만남이라고 답한 데서 유추 가능하듯 뮤지컬 역시 메시아의 구원이라는 기독교적 메시지를 그대로 유지했다. 영화계에서조차 수 십 년 간 리메이크에 나서기 어려웠던 과거의 작품을 동시대 무대에 세우기에 앞서 제작자는 해당 작품이 지금의 한국에서 유효한지를 물어야 했을 것이다. 문제는 원작 특유의 강한 종교적 색채가 다소 희석됐을지언정 여전히 작품의 핵심 줄기로 남아 일부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데서 나아가 ‘갑작스러운 용서’와 ‘기적적으로 치유된 어머니와 누이’ 등으로 이어지는 결말의 개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재연 무대에서는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10월29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