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24/7]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쥐꼬리 배정에..사비 모아 피해자 돕는 경찰

작년 집행된 기금 904억 중
법무부 376억·여가부 345억...
경찰은 1% 불과한 9억 사용에
"긴급구조금 지급권 필요" 제기
부처별로 나눠 구제절차 복잡
피해자보호기금 개선도 나서야



‘부산 여중생 집단폭행’ 피해자 A(14)양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됐고 정신적인 충격도 컸다. 가해자 형사처벌과 별개로 치료비 등은 민사합의를 거쳐야만 받을 수 있다. 하지만 A양은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에 따라 외상과 심리치료비를 지원받는다. 강력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은 육체는 물론 정신적·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다 결국 사회로 복귀하지 못하는 2차 피해까지 겪는 사례가 많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은 이러한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다만 이를 모르는 시민들이 적지 않아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도 그냥 지나쳐버리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은 지난 2010년 제정됐다. 법무부·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 등에서 추진하던 범죄피해자보호사업 관련 예산을 통합해 기금을 만들어 운용한다. 기금은 범죄 피해자를 위한 경제·의료지원, 심리치료, 신변 보호와 법률지원 등에 사용된다. 재원은 시민들이 내는 각종 벌금에서 6%를 떼어내 적립하는 벌금 전입금이 90%가량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구상권을 통한 변상금 등으로 채워진다. 기금 규모는 2014년 556억 원에서 2015년 826억 원, 2016년 904억 원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1차 수사기관인 경찰부터 검찰, 피해자 보호기관인 범죄피해자지원센터, 한국피해자지원센터, 성폭력피해자통합지원센터, 지방자치단체 등 다양한 기관에서 받을 수 있다.

직접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과 검찰이 다른 기관에 연계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우가 많다. 경찰은 전국 경찰서에 ‘피해자전담경찰관’을 두고 신변 보호, 임시 주거지원, 상담치료 등 피해자 보호·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피해자전담경찰관에게 기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도 상담받을 수 있다. 경찰은 긴급하다고 판단되면 직접 범죄 피해자를 지원하기도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범죄 피해 성격에 따라 법무부·여가부·복지부·지자체 등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해주는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범죄에 의한 피해자 지원은 주로 법무부 산하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지원금, 법무부의 구조금에서 이뤄진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경찰이나 검찰 등으로부터 사건·사실의뢰서를 접수받으면 피해자의 경제적 상황 등에 대한 상담을 진행한다. 진단 5주 미만의 피해자에 한해 매달 1회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면 △의료비 △신변 보호 △자녀돌봄비 △상담 및 심리치료 △심리·주거지원 △학자금 등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구조금은 사망이나 진단 2개월 이상의 중상해를 입은 범죄 피해자에게 지원된다. 구조금을 받으려면 주소지 또는 범죄 발생지를 관할하는 지방검찰청 지구심의회에 구조금 신청을 하면 된다. 구조금을 신청하면 지구심의회를 거쳐 1인당 최대 1억원까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여가부는 주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한다. 여가부 산하 성폭력상담소·해바라기센터 등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해주는 상담사 인건비로 기금의 상당 부분을 쓰고 나머지를 치료비 등으로 지원한다. 복지부는 배정된 기금 거의 대부분을 아동학대피해자보호소 운영에 사용한다. 전국 61개의 아동보호전문기관 운영비를 지원해 학대를 당한 아동들이 안전한 곳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은 지난 7년간 범죄 피해자의 성공적인 일상생활 복귀에 기여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운용 과정에서 개선해야 할 점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먼저 범죄현장에서 직접 피해자를 만나는 경찰에 배정된 기금이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 지난해 집행된 기금 904억원 가운데 법무부가 376억1,700만원, 여가부가 345억1,200만원, 복지부가 173억2,700만 원, 경찰이 9억8,500만 원을 각각 사용했다. 경찰이 쓴 금액은 전체 기금의 1%가량에 불과했다. 올 들어서도 8월까지 경찰이 민간단체와 서울 지역 범죄 피해자를 연계해 지원한 금액은 총 6,600만원(58명)에 그쳤다.

범죄 피해자의 딱한 현실을 직접 접하는 경찰은 본인이 사비를 모아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피해자전담경찰관은 동료 경찰들끼리 돈을 모아 피해자의 생활비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주명희 서울경찰청 피해자보호담당관은 “치료비 등 범죄현장에서 긴급하게 피해자를 지원해야 할 상황이 많은데 현재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과 연계하는 데 주력하도록 돼 있어 한계가 있다”며 “피해자보호법에 규정된 피해자에 대한 긴급구조금 지급 권한만이라도 경찰로 이관해 피해자를 신속히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날로 흉포해지는 범죄 속에 피해구제 대상에서 제외돼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범죄 피해자도 있다. 친족범죄 피해자를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현행 피해자보호법은 범죄행위 당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부부나 4촌 이내의 친족이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 다만 범죄피해자보호법 개정으로 2015년 4월부터 ‘가해자에게 이익이 귀속될 우려가 없는 경우’ 친족관계에 의한 범죄 피해자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실제 계모와 친부로부터 학대를 받아 세상을 등진 신원영(당시 7세) 군의 친모가 이 법 개정으로 범죄피해자구조금을 지급 받았다.

여러 부처가 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다 보니 피해자 지원절차가 복잡하고 부처 간 협조가 잘 안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해 2월 법무부 장관 소속의 범죄피해자보호위원회를 각 중앙행정기관 조정권한을 가진 국무총리 소속으로 설치해 범정부적으로 피해자 지원을 통합 관리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범죄피해자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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