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錢쟁] 유자식 상팔자?…육아비용에 목이 죈다

비싼 육아도우미 비용에 조부모 의존하거나
'로또' 직장어린이집 입소해도 아이 통학 걱정
저출산 지원 많아졌다지만 정작 체감 어려워
"그래도 아이 웃는 얼굴 보면 고통 사라져요"

15일 서울의 한 직장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 여성이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바라보며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국공립 및 직장 어린이집은 부모들이 육아의 어려움으로 꼽는 대표적 사례다. /이호재기자


“부모라면 누구나 ‘쩐의 전쟁’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아이를 위해 돈을 쓰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매달 쪼들리는 가계를 꾸리다 보면 그 살벌함을 절절하게 느껴요.”

서울 역삼동에 거주하는 맞벌이 직장인 오준영(36·가명)씨의 ‘전쟁’은 지난해 말 갓 두 돌을 지난 아들이 직장어린이집에 당첨되면서 시작됐다.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 ‘하늘이 허락한 자리’로 불리는 직장어린이집 당첨은 분명히 오씨에게 찾아온 행운이었다. 임신 직후 신청했던 국공립 어린이집은 대기번호가 200번대였다. 집 근처 민간어린이집은 오후3시에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최근 복직한 부인은 직장이 강북에 있는데다 야근까지 잦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퇴근시간에 맞춰 아이를 맡기고 낮시간에도 아이를 살필 수 있는 직장어린이집만큼 부모에게 안심되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당시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던 오씨는 강남 오피스가(서울 역삼동)에 자리한 회사와 어린이집 위치 때문에 등원을 포기하고 다음 순위 당첨자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지를 두고 꼬박 한 달간 아내와 밤새 머리를 맞댔다. 신혼 때부터 모아둔 전세금 3억원으로 대출 없이 버텨온 오씨 부부의 꿈은 차근차근 돈을 모아 몇 년 뒤 내 집을 장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장어린이집에 보내려면 세 살배기 아이가 매일 편도 1시간 이상 걸리는 출퇴근길에 시달려야 한다.

결국 오씨는 어린이집 인근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새벽에 나와 야밤에 들어가도 괜찮지만 아이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부모로서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컸다. 곱절 뛴 전세금과 이사비용 등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이를 위해 어떻게든 해보기로 결론을 내렸다. 덕분에 아이는 편안해졌지만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이자를 볼 때마다 오씨는 자신의 선택이 정말 옳았는지 따져보게 된다고 말했다.



두 살 난 딸을 키우는 김주희(33·가명)씨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부부가 금융계에 종사하는 김씨는 야근이 잦은 상황을 고려해 입주 육아도우미를 구하려다 시세를 듣고 숨이 턱 막혔다. 김씨의 출퇴근시간과 한국인 시터라는 희망조건에 맞는 가사도우미 비용은 월 320만원. 중국동포 도우미를 쓴다고 해도 200만원은 기본이었다. 부부 중 한 사람의 월급은 사실상 포기하게 되는 셈이다.


결국 김씨는 육아휴직 만료를 두 달 앞두고 친정 근처로 이사했다. 조부모 육아 말고는 ‘워킹맘’에게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의 손을 빌려도 경제적 부담은 적지 않다. 손주를 키우느라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친정 부모를 위해 매달 100만원을 드리고 신혼 때 살던 서울 외곽 소형아파트에서 친정 근처로 옮기면서 전세 부담이 늘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나마 집 근처 민간어린이집이라도 자리가 난 덕분에 친정엄마가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쉴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외벌이는 외벌이대로 ‘쩐’이 목줄을 죈다. 중소 무역회사에 다니는 박우현(38)씨는 4년 전 아이를 낳은 뒤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 아내에게 항상 미안하다. 출판사에 근무하던 아내는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고 그 기회비용을 떠안았다. 애 볼 사람을 구하자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에서 소득이 조금 더 많은 남편이 일터로 향했다. 하지만 돈 때문에 외벌이 길을 택한 박씨 부부에게도 심각한 시련이 찾아왔다. 10년 가까이 직장에 다니던 아내가 아이를 혼자 돌보다가 우울증을 앓게 된 것이다.

박씨는 아내가 치료에 전념하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어린이집을 찾아보고 있지만 맞벌이 부부가 많은 동네라 빈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구에서 지원하는 육아돌보미도 대기순번이 만만치 않다. 박씨는 “주변에서는 ‘어린이집 신청서류를 맞벌이로 꾸며서 넣으라’고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며 “아내가 단 몇 시간이라도 육아를 잊고 쉴 수 있으면 하는 바람으로 틈나는 대로 시간제 보육 사이트에 들어가 신청한다”고 말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대한민국 가정집에서는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이러한 일들은 어린이집 입소부터 넓게는 폭등하는 주거비용에 이르기까지 육아가 경제적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을 오롯이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출산도 육아도 선택이니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저출산 위기는 국가 생존이 달린 문제”라며 출산을 장려하는 국가가 막상 육아전선에서 분투하는 이들을 살뜰하게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말로는 육아가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

어린이집 문제가 가장 대표적이다. 양질의 보육을 제공한다는 이유에서 부모의 선호도가 높은 국공립 또는 직장어린이집 수는 보육을 필요로 하는 아동에 비해 현격하게 적다. 보육아동이 많은 서울에서는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인 만 5세까지의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직장어린이집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 가운데 직장어린이집 이용 비율은 3.6%에 불과해 민간어린이집(51.4%), 가정어린이집(22.6%), 국공립어린이집(12.1%) 등에 비해 극히 적다. 전문가들은 제도가 도입된 지난 1987년보다 맞벌이 부부 비율은 크게 늘었지만 정부가 직장어린이집 설치를 외면하는 기업을 강력히 제재하지 않아 과태료(최대 1억원)를 선택하는 기업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현행법상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하는 기업은 대기업 중심으로 자영업이나 중견·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대다수 부모에게는 접근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세 아이를 키우는 김민성(42)씨는 “세 아이를 키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아빠와 엄마를 바라보고 한번 웃어주면 모든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힘이 난다”고 말한다. ‘바보 아빠’ ‘바보 엄마’라고 놀리는 사람도 있지만 아이들이 힘들고 지친 부모를 위로하고 힘을 내게 하는 고마운 존재라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이수민·연유진기자 noenemy@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