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가 안팎에서는 시 주석이 두 번째 임기가 끝나는 오는 2022년 이후에도 자신의 권력을 놓지 않는 장기 집권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내세워 3연임 제한을 교묘하게 피해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집권 연장 시나리오를 재연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서구식 선거제도가 없는 중국에서는 5년마다 열리는 공산당 전당대회 격의 당대회에서 우리의 국회의원 격인 인민대표와 대통령 격인 최고 지도자를 뽑는다. 형식적으로는 차세대 최고 지도자를 포함한 당 지도부 인선, 당대회 이후 5년간의 정치·경제 이념 확정 등 막강한 권한을 지닌 중국 공산당 최고 권력기관이다. 현재 중국 최고 지도자인 국가주석도 이 자리에서 결정돼 한 차례 연임 후 10년마다 새로운 인물로 교체된다.
당대회는 전국에서 선발된 2,000여명의 인민대표들이 200여명의 중앙위원을 선출하고 이들이 다시 25명의 정치국 위원을 뽑는다. 이 가운데 중국 최고 지도자 집단인 5~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을 선출한다. 5년 뒤 차세대 최고 지도자는 이 5~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퇴임연령의 제한을 받지 않는 신진 정치인 중 가장 서열이 높은 사람으로 내정된다. 10년 임기의 최고 지도자를 5년 앞서 정해두는 전통에 따라 7로 끝나는 해에 해당하는 홀수 차수의 당대회에 후계자를 미리 내정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경우 2007년 17차 당대회에서 서열 6위로 상무위원에 올라 차기 국가주석과 총서기 자리를 예약했다. 리커창 당시 랴오닝성 서기는 서열 7위의 상무위원에 올랐다. 이 같은 중국 정가 룰에 따른다면 시 주석은 집권 10년의 임기를 끝내고 2023년에는 후임자에게 자리를 내줘야 한다.
지난해 초만 해도 올해 당대회에서 5년 뒤 차세대 최고 지도자가 내정될 것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시 주석의 오른팔로 부패 청산의 칼잡이 역할을 맡았던 왕치산(69) 중앙기율검사위 서기가 정적들을 잇따라 제거한 데 이어 지난해 말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8기6중전회)에서 시진핑에게 ‘핵심’ 지도자 지위를 부여하면서 중국 정가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시 주석은 올 7월에는 차세대 지도자 유력 후보였던 장쩌민 계열의 쑨정차이를 낙마시켜 이번 당대회에서 자신의 연임 구도를 분명히 하겠다는 의지를 뚜렷이 드러냈다.
외형상 당대회에서 25명의 정치국원이 선출되지만 결국 현직 7인의 상무위원들과 원로들의 이른바 밀실 ‘폐문회의’를 통해 최종 정치국원과 상무위원 명단이 확정된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당대회가 현직 상무위원과 정치 원로 등 중국 최고 권력자들의 결정 사항을 추인하는 거수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과거에는 원로들이 신임 상무위원 후보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시진핑 절대권력이 강화되면서 최근에는 원로들의 목소리가 급격히 위축된 상황이다.
최대 하이라이트는 정작 폐막 하루 다음날인 25일에 열리는 시진핑 당 총서기의 기자회견이다. 기자회견장에서 중국 정치 지도부의 꽃인 정치국 위원 25명이 공개되고 중국 황제집단으로 통하는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서열대로 차례로 등장한다. 현재 차세대 지도자 후보로 꼽히는 시 주석의 복심 천민얼(57) 충칭시 서기와 역시 50대인 후춘화(54) 광둥성 서기도 상무위원에 오를 경우 이때 공식 등장한다.
하지만 만일 당대회 때 당헌에서 시 주석의 연임을 인정하는 표현이 담긴다면 새로 등장한 차세대 지도자들은 시 주석과 힘겨운 동거에 들어가야 한다. 향후 5년간 후계자 수업을 받기보다는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을 돕는 보조자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왕 서기가 ‘칠상팔하(67세는 잔류하고 68세는 은퇴)’ 관례를 깨고 ‘잔류’에 성공할 경우 이 같은 시각은 더욱 굳어질 수 있다. 이는 시 주석 1인 체제를 더욱 굳건히 하는 동시에 3연임 시기에 퇴직연령 제한에 걸리는 시 주석에게 ‘면죄부’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