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배우 문성근씨가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피해 상황에 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우 문성근(64) 씨가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만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조사를 받기 위해 18일 오전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문 씨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퇴출 압박을 받는 등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블랙리스트 관련 피해자 조사를 한 것은 문씨가 처음이다. 문씨는 이날 오전 10시 43분께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국정원이 내부 결재를 거쳐서 음란물을 제조·유포·게시했다”며 “이는 곧 이명박 정권의 수준과 같은 것이라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국정원이 블랙리스트 부분에 대해 이명박 전 대통령께 직보했다는 게 확인된 것”이라며 “이 사건 전모를 밝혀내면서 동시에 이 전 대통령도 직접 소환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정원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임 초기인 2009년 ‘좌파 연예인 대응 TF’를 구성해 정부 비판 성향의 연예인이 특정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도록 압박했다.
문씨는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 문화예술계 인사 82명 중 한 명으로, 국정원은 문 씨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기 위한 ‘특수공작’의 하나로 리스트에 포함된 배우 김여진씨와 문씨가 나체로 침대에 누워 있는 합성사진을 제작해 유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씨는 이날 부친인 고 문익환 목사의 뜻을 교육철학으로 삼아 설립한 대안학교 ‘늦봄문익환학교’의 국정원 사찰에 관한 의혹도 제기했다. 또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활동을 했던 배우 명계남씨가 과거 사행성 게임인 ‘바다이야기’에 연루돼 뒷돈을 챙겼고, 이를 이용해 문씨의 정치권 진출을 도왔다는 낭설에 대해서도 검찰 조사를 통해 확인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또 “5공 때든 6공 때든 (블랙리스트는) 다 있었다”며 “그러나 민주정부가 들어서며 없어졌던 게 복원됐다는 게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압력을 가해 어쩔 수 없었다는 건 민주화 이전에는 가능한 말이었다”며 “그러나 없어졌다 생겼는데 또 협력했다는 건 인간적,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만큼 역사로 분명히 기록해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씨는 블랙리스트 피해 관련 집단소송을 하겠다는 뜻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대략 5∼6명이 참여의사를 밝혀왔다”며 “이달까지 피해사례를 수집해 다음달께 소장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문씨를 시작으로 주요 피해자를 불러 조사를 본격화할 방침이다. 이 결과를 토대로 범행에 가담한 국정원 간부 등의 국정원법 위반 혐의 수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19일에는 방송인 김미화씨가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