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명예 퇴진한 김준기...후임 이근영 '동부대우전자 경영권 사수' 시험대에 올라

금감원장 출신 신임 이근영 회장
채권단 설득 등 모든 수단 강구할듯

이근영 동부그룹 회장


김준기 전 동부 그룹 회장


최근 여성 비서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사실이 알려진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21일 전격 사임했다. 그는 이날 간단한 자료를 통해 “제 개인의 문제로 회사에 짐이 돼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오늘 동부그룹의 회장직과 계열회사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후임 회장으로는 이근영 전 금융감독원장이 선임됐다. 산업은행 총재 등을 거친 이 회장은 지난 2008년 동부메탈 및 생명 사외이사로 일하면서 동부그룹과 연을 맺었고 직전까지 동부화재 고문을 맡았다. 재계는 몇 안 되는 현역 창업 1세대로 꼽히는 김 회장이 불미스러운 일로 결국 사임하자 애석해하는 분위기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동부가 전자와 금융으로 그룹을 재편하고 사명도 ‘DB’로 바꾸며 도약을 모색하던 차였다”며 “실망과 안타까움이 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회장은 대학(고려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인 1969년 자본금 2,500만원을 들고 미륭건설(동부건설의 전신)을 설립했다. 1970년대 중동에서 수완을 발휘해 돈을 번 그는 철강(동부제철)·비료(동부팜한농)·물류(동부익스프레스)·금융(동부화재) 등으로 그룹 외형을 불렸다. 한때 계열사 61곳, 자산 총액은 17조원이 넘었다. 그의 퇴진으로 당장 그룹 운영에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이미 김 회장의 아들인 김남호 동부화재 상무는 그룹 지분을 부친보다 많이 갖고 있을 정도로 경영권 상속은 거의 일단락된 상태다.

그럼에도 그룹 수장이 신속히 교체된 데는 동부그룹 차원에서도 발등의 불인 현안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재계 안팎의 분석이다. 무엇보다 동부그룹 제조 부문 핵심계열사인 동부대우전자의 경영권이 넘어갈 위기에 놓였다. 바로 재무적투자자(FI)의 지분 매각권 행사 때문이다. 이 회장으로서는 그룹 경영의 키를 잡자마자 시험대에 오른 셈. 김 회장도 성추행 사건이 불거지기 직전까지 동부하이텍의 동부대우전자 지분 20.5%를 담보로 산은에 자금지원을 요청하고 투자자를 물색하는 등 동부대우전자 경영권 사수를 위해 백방으로 뛰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김 회장의 전자사업에 대한 애착은 유별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동양그룹 회사채 사태 이후 촉발된 그룹 구조조정으로 계열사가 반토막(2015년 53개→2016년 24개) 나는 와중에도 동부하이텍과 동부대우전자만은 기어이 움켜쥐었을 정도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김 회장 스스로가 최대 고비를 맞고 있는 동부대우전자의 향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서둘러 그룹 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회장이 금융감독 수장과 산은 행장 출신인 점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대목이다. 그간 동부와 산은은 불편한 관계였다. 동부그룹의 구조조정 방식을 두고 경기고 선후배였던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과 김 회장의 갈등은 대단했다. 동부 쪽에서는 ‘포스코 거절로 동부발전당진·동부제철의 패키지딜 실패→계열사 신용등급 하락→유동성 위기→계열사 매각’ 등 일련의 사태에 산은 책임이 적지 않다는 피해의식이 남아 있다. 동부대우전자와 관련해서도 산은은 동부그룹에 대한 자금지원에 부정적 입장이다. 이 회장으로서는 ‘채권단의 마음 돌리기’를 포함해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시장에서는 대유·현대백화점그룹·SM그룹 등과 하베(멕시코)·하이얼(중국)·일렉트로룩스(스웨덴) 등이 동부대우전자의 인수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국내 후보들은 인수에 미온적이고 해외 후보는 멕시코 등 동부대우전자의 해외 알짜자산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동부그룹 측은 “외국 기업에 경영권이 넘어가면 광주공장의 일자리가 날아갈 가능성이 크다”며 동부대우전자를 계속 품에 안겠다는 의지다. 과연 이 회장이 설상가상의 핀치로 몰리고 있는 동부그룹의 제조 부문을 지켜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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