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이 2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직원들에게 인사하며 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양승태(69·사법연수원 2기) 대법원장이 최근 정치권 등의 ‘법원 흔들기’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양 대법원장은 2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상충하는 가치관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갈수록 격화돼 거의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며 “정치세력 등의 부당한 영향력이 사법부에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뤄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재판 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다르기만 하면 극언을 마다 않는 도를 넘은 비난이 다반사로 일고 있고 폭력에 가까운 집단적인 공격조차 빈발하고 있다”며 “사법부가 당면한 큰 위기이자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의 기본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이는 최근 한명숙 전 총리 판결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과 국정원 댓글 수사 관련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적극 반발한 검찰의 태도 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양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등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일선 판사들에 대해 불편한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법관 독립의 원칙은 법관을 위한 제도가 아니고 법관에게 특혜나 특권을 주는 것도 아니다”라며 “법관 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제도”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국가 권력의 한 축인 사법부의 행정을 총괄하는 일은 단 하루도 마음 놓을 수 없는 가시밭길이었다”며 6년간의 애환을 표현했다.
양 대법원장은 마지막으로 “한 그루 늙은 나무도/고목 소리 들으려면/속은 으레 썩고/곧은 가지들은 다 부러져야/그 물론 굽은 등걸에/매 맞은 자국들도 남아 있어야”라는 오현 스님의 시 구절을 소개하며 “온몸과 마음이 상처에 싸여 있는 고목 같은 법관이 될 수 있다면 더없는 영광과 행복으로 여기겠다”고 42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무리하는 소감을 밝혔다.
양 대법원장의 공식 임기는 24일 밤12시에 종료된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