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워치]짠테크 열풍의 이면, 노후 준비·고용불안에 '욕구 통제' 고달픈 현실

유행 지속될땐 내수침체로 이어져 경제 걸림돌

‘짠테크(짠돌이+재테크)’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며 최근 은둔하던 구두쇠들이 ‘재테크 고수’로 추앙받고 있다. 짠테크는 합리적 소비의 다른 말로 통한다. ‘냉장고 파먹기’와 ‘봉투 살림법’처럼 겉보기에 유난스럽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아껴쓰고 저축하자’는 구호에 충실하며 차곡차곡 돈을 모아나가기 때문이다. 가계의 소득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미래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씀씀이를 최소화하고 저축하는 ‘짠테크’, 그러나 이면에는 불확실한 미래와 고달픈 현실에 직면한 것도 일조한다. 일자리 질 저하와 청년 실업, 극심한 노인 빈곤과 같은 상황이 어쩔 수 없이 짠테크를 선택하도록 내몰고 있는 것이 이유기도 하다.

◇‘합리적 소비’의 이면에 숨겨진 현실=경기도 남양주시에 살고 있는 김민석(34)씨는 최근 TV에서 ‘짠테크’ 얘기를 볼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올 초 결혼한 김씨는 지난 2년간 전세자금을 한 푼이라도 더 모아보겠다며 ‘매일 가계부 쓰기’ ‘절대로 택시 타지 않기’ 같은 스스로의 원칙을 지키려고 애썼다. 모임도 최소화하고 ‘신상(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나마 짠돌이 생활 덕분에 부모님 도움 없이 작은 전셋집을 마련한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는 “돌이켜보면 나름 ‘짠테크 고수’였지만 그리 행복한 시간은 아니었다”며 “지금도 검소한 습관은 그대로지만 과거(2년 전)처럼 살기는 싫다”고 회상했다. 김씨 말대로 짠테크는 ‘합리적 소비’를 위해 자신의 욕구를 강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점에서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김씨의 경우 ‘신혼집 마련’이라는 절대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현재 열풍처럼 번지는 짠테크 역시 김씨처럼 목돈이 필요하거나 사고 싶은 물건이 생겨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짠테크’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데는 노인 빈곤과 청년 실업난이라는 사회 문제도 한몫했다. 오지윤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은 “젊은 층의 소비 축소는 노후를 대비하거나 고용불안과 질 좋은 일자리 부족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노인가구 중 중위소득 50% 이하 비율)은 47.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나라에 노후 보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미래를 대비할 가장 손쉬운 수단이 바로 저축이다. 특히 극심한 실업률은 짠테크 현상을 더욱 부추긴다. 지난해 기준 청년 실업률은 9.8%로 매년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고용시장 전반적으로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격차와 장시간 근로, 비정규직 확대 등 일자리의 질이 떨어지는 불안한 현실이 ‘짠테크’의 길로 이끄는 것이다. 불안한 미래와 고달픈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가처분소득을 늘려야 하는데 소득은 내 마음대로 안 되니 지출을 줄이는 데서 짠테크 열풍이 불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욜로 부러운 짠테크, 그러나 더 먼발치의 이태백=단순한 사회적 현상이 아닌 세태의 양극화가 짠테크 열풍을 몰고왔다는 분석도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에 불고 있는 짠테크와 비교되는 또 다른 사회 현상으로 주목받고 있는 ‘욜로(YOLO)’ 바람. 욜로는 ‘인생은 한 번 뿐(You Only Live Once)’이라는 말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이 순간의 행복을 중시하며 소비하는 태도를 말한다. 노후 준비나 내 집 마련에 신경 쓰기보다는 취미와 자기계발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사람들이다. 직장인 박진영(32)씨는 “월급이 많다고 욜로 생활을 즐기고 적다고 짠테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경제적 여유가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 같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욜로를 부러워하고 삶에 쫓겨 할 수 없이 선택한 ‘짠테크’라고 하더라도 또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부러워하는 시각도 있다. 바로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다. 지난달 기준 취업준비생은 69만5,000명으로 지난해보다 무려 9.3%나 급증했다. 시대적 양극화로 당장 먹고살 소득을 마련할 기회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서울 노량진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이영철(28)씨는 “소비를 줄이거나 저축을 늘리거나 다 돈을 벌 때 이야기”라며 “취업에 성공하면 어렵다는 ‘짠테크’도 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짠테크 열풍 지속되면 내수침체로 이어져 경제 걸림돌=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너도나도 짠테크에 뛰어들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없을까. 이론적으로는 인구 전반의 소비가 위축되면 기업 실적이 악화하고 해고와 실업으로 또다시 소비가 움츠러드는 악순환을 상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짠테크 열풍’만으로는 얼마나 많은 인구가 실제 지출을 줄였는지, 각각의 이유는 무엇인지를 따져볼 수 없기 때문에 섣불리 경제에 부정적이라는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이규복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 수요가 많을 때는 저축도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저축이든 소비든 한쪽이 과한 경우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짠테크 현상만으로 소비 축소를 얘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짠테크’가 일시적 유행에 머물지 않고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움직임이 나타날 경우다. 돈을 쓰기보다는 모으려고 하는 탓에 내수침체로 연결돼 경제에 후폭풍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오 부연구위원은 “노후대비나 고용불안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원인이라면 장기적으로 소비를 위축시키는 신호로 볼 수 있다”며 “결국 돈을 쓰지 않고 모아두기만 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질 경우 국가 경제 전체로 봤을 때는 부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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