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익시스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 및 하역 설비)’가 호주 익시스 유전으로 출항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해양플랜트 경쟁력 강화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정책에 필요한 자금의 상당 부분을 생존에 허덕이는 업계에 기댄 탓이다. 일감 부족에 시달리는 국내 조선 업계가 구조조정 강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정부마저 손을 놓고 있어 해양플랜트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지난해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 3사가 일제히 실적 부진의 늪에 빠지자 해양플랜트가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애초에 3사 간 치열한 경쟁으로 높은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려웠던데다 건조 과정에서 계약 변경이나 공사 지연으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조선 업계의 한 관계자는 “납기를 못 맞추는 데 대한 책임을 국내 조선 업체들이 다 떠안는 구조였던 탓에 피해가 더욱 커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선사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양플랜트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전 세계적으로 선박 발주가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선박 수주만으로는 현재 조선사 규모나 인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 올해 상반기 세계 선박 발주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30% 증가했지만 지난 2011~2015년 상반기 발주량과 비교하면 60%가량 감소해 평년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이 중소형 선박 시장에 이어 국내 조선사가 독식하던 초대형·고부가가치 시장까지 넘보고 있어 발주된 선박을 가져가려는 조선소 간 경쟁마저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조선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해양플랜트 육성 대책을 포함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정부는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한동안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면서도 해양플랜트의 기술력을 높이기 위한 세 가지 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해양플랜트 설계 전문회사 설립 △프로젝트 매니저(해양플랜트 전문가) 100명 양성 △오는 2020년까지 기자재 국산화율 40% 달성 등이 그 내용이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 실제 시행되고 있는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2017년 상반기를 목표로 하던 해양플랜트 설계 전문회사 설립은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무기한 연기’됐다. 연간 70억원 규모의 운영비를 업계를 통해 확보할 계획이었지만 업계 측에서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매니저 100명 양성 방안을 놓고도 정부는 업계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조선사가 직접 나서 사내 해양플랜트 인재를 육성하도록 독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적·금전적 지원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 말뿐인 대책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해양플랜트에 들어가는 국산 기자재 비중 역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발표 당시 25%였던 국산화 비율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거의 변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자금 집행 계획 역시 마련되지 않았다.
조선 업계에서는 애초부터 정책 설계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2016년 최악의 수주 절벽 여파에 따른 일감 공백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있는 자산도 팔아치우는 조선사로부터 정책 집행에 필요한 자금을 기댄 게 안일했다는 것이다. 조선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조선 3사의 최대 화두는 생존”이라며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미래를 바라보고 돈을 낼 조선사를 찾기는 힘들 것”이라고 귀띔했다.
문제는 조선사들이 생존전략을 짜느라 분주한 가운데 정부마저 뒷짐을 지고 있어 국내 해양플랜트 경쟁력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자구안 이행 과정에서 사업 규모 자체를 축소하고 있으며 삼성중공업 역시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해양플랜트 사업 부문에 종사하던 상당수 인원을 내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도 최근 해양사업부 인력 100여명을 다른 부서로 이전 배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중국이 올해 초 ‘해양 플랜트 굴기(堀起)’를 내세우며 연구개발(R&D)은 물론 금융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한 터라 국내 조선사의 해양플랜트 부문 경쟁력 상실이 가속화할 수 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조선사가 몸집을 줄이고는 있지만 빈 도크를 채우려면 선박뿐만 아니라 해양플랜트 수주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당장에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큰 틀에서 보고 꾸준한 투자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우보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