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성장전략의 성공은 문재인 정부의 산업정책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혁신성장’이라는 선언적 수준의 전략을 내놓기는 했지만 향후 10년을 끌고 가야 할 구체적 액션플랜이 없다. ‘속 빈 강정’이라는 비아냥마저 나온다. 당시와 비교하면 상황은 더 나빠졌다. 5.0%였던 잠재성장률이 2%대 중반까지 고꾸라졌다. 각종 규제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경영비용 탓에 기업의 탈(脫)한국도 가속화하고 있다. 제대로 된 성장전략 없이는 우리 경제가 침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성장전략 부재의 가장 큰 원인이 반(反)기업정서라고 입을 모은다. 성장전략 수립의 핵심은 국가와 기업의 연구개발 프로젝트에서 향후 우리 경제를 이끌 선수를 선별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산업도 이 같은 옥석을 가리는 과정에서 나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관계와 재계·학계가 함께 모여 먹거리를 찾아냈던 ‘차세대성장산업발굴기획단’이다. 당시 분과회의를 이끌었던 장석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 정책으로 미래 먹거리를 만들 마땅한 수단은 없다. 노무현 정부 때 기업과 머리를 맞대고 차세대 성장동력을 찾았던 것도 이 때문”이라며 “정부가 목표와 타깃을 세우고 기업이 먹거리를 발굴하면 담당 부처가 수단을 발굴해 이를 지원하는 게 성장전략의 요체인데 지금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업과 단절된 탓에 정부가 시장을 보는 눈도 막혀 있다. 온라인과 모바일로 소비 양태가 바뀌는 시대에 골목상권 보호를 이유로 의무휴업제를 확대하는 시대착오적 규제정책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격변하는 시대에 살아남아야 하는 기업이 되레 웅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소득주도성장은 성장 없는 분배 정책일 뿐”이라며 “마중물 타령을 하며 기업을 찾지만 기업의 성장 여력은 점점 소진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정부 정책이 되레 기업을 해외로 내몰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투자 유출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5년 우리 기업의 해외직접투자 누적금액은 2,859억3,200만달러로 2005년(386억8,300만달러) 대비 639.2% 늘었다. OECD 평균은 84%였다. 일본(217.3%), 프랑스(91.6%), 독일(65.5%), 미국(65.1%)과 비교하기가 무색하다. 최근 들어서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14년 358억8,000만달러였던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 규모는 지난해 492억4,000만달러로 2년 새 37.2% 급등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 국내투자는 190억달러에서 213억달러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투자 유출의 속도도 빠르다.
전문가들도 지정학적 불확실성 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까지 겹치면 이 같은 경향이 짙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혁신성장이라는 성장전략의 밑그림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7월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를 통해 △네트워크형 정책금융으로 중소기업 성장동력화 △기업투자촉진법 제정 등 투자 중심 창업생태계 조성 △4차산업혁명위원회 신설 통해 대응 추진계획 수립 △주력산업 경쟁력 제고 및 리쇼어링 통한 신산업 육성 △중소중견 수출 비중 40% 이상 확대 등 통상전략 전환 등 성장전략의 개략적 방향만 내놓았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정부가 너무 단기적으로 접근해 불확실성을 충분히 상쇄시켜주지 못하면 기업 여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문재인 정부가 혁신 모토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전략이 안 나오고 있어 기업에서도 경영전략을 짜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상훈기자 이상훈·빈난새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