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은 26일(현지시간) 칙령을 통해 내년 6월부터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라고 명령했다. 칙령에 따르면 사우디는 30일 이내에 실행방안을 제시할 위원회를 구성해 내년 6월24일까지 해당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 운전이 금지된 나라인 사우디의 이번 조치는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대표적인 보수적 관습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판단된다. 1990년 첫 운전권 허용 시위에 참여했던 여성인 파우지아 알바크르 사우디대 교수는 이날 칙령 내용에 대해 “30여년을 투쟁한 결과”라며 “매우 기쁘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날 사우디 외무부가 워싱턴 주미 사우디대사관 대변인으로 여성인 파티마 바에셴을 임명한다는 발표도 나왔다. 사우디 공공기관의 ‘입’에 여성이 임명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6월 말 왕세자 자리를 꿰찬 빈 살만의 개혁조치로 사우디 사회가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사우디는 강력한 이슬람 율법으로 다스려지는 절대군주 체제로 여전히 여성 인권은 세계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왕세자 주도로 지난해 선포된 경제·사회 개혁 프로그램 ‘비전 2030’이 이행되면서 올 들어 사회개혁 조치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국가 중심의 축을 유전이 몰린 동부 걸프 연안에서 서부 홍해로 옮기기 위한 ‘홍해 휴양지 프로젝트’와 함께 관광특구 내에서 음주 및 여성들의 비키니 착용을 허용한다는 파격적인 조치가 발표됐다. 이에 앞서 사우디는 남성 후견인인 ‘마흐람’의 허가 없이 여성들이 공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했으며 성인 여성의 자유외출권을 보장했고 4개 여성인권 강화 법안도 제정했다.
빈 살만 왕세자의 이 같은 과감한 개혁은 석유 종언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행보로 풀이된다. 경제의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관광 등 새 수입원과 외국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구습에 얽매인 부정적 국가 이미지 개선이 급선무가 된 것이다. 또 인구 3,000만명이 채 되지 않는 사우디로서는 20%대에 그치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비율을 끌어올려야 한다. 아울러 서열의식이 강한 사우디에서 사촌형을 밀어내고 왕위 계승자에 오른 빈 살만 왕세자로서는 민심을 얻고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눈에 띄는 결과물이 필요하다는 측면도 있다.
다만 이 같은 개혁 모델이 순탄하게 진행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젊은 왕세자의 개혁 승부수가 성과를 발휘하고 더 큰 혁신이 가능하려면 성직자 및 보수세력의 불만을 차단하고 활력을 잃은 경제를 되살려 추진력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