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 범위와 보상 문제를 놓고 정부와 기업, 그리고 피해자 사이의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데 지난 8월 초 다시 ‘살충제 계란’ 사건이 터졌다. 이 사태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한 비정부기구(NGO)의 발표로 ‘생리대 휘발성 유기화합물(VOC) 검출’ 논란이 다시 전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이렇게 연이어 터진 세 사건에 모두 화학물질이 관련되면서 국민들은 화학물질공포증(chemical phobia)에 시달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 화학물질이 아닌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 물도 산소도 화학물질이다. 음식물도, 그것을 소화하는 소화효소도, 그리고 우리 몸을 구성하는 탄수화물·단백질·지방도 모두 화학물질이다. 화학물질 없이는 사람도 존재할 수 없고 이 세상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
만약 논란이 된 화학물질에 대한 사용 기준을 정하고 엄격히 규제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화학물질과 관련된 세 가지 사건은 사실 화학물질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관리하는 부처의 문제(가습기)이고 무분별하게 사용한 현장의 문제(산란계 농장)이며 기준 미비(생리대)와 공개 과정의 혼란 문제다.
‘생리대 유해물질’ 사태는 가습기 살균제나 살충제 계란과 다른 교훈을 주고 있다. 발암물질로 지칭된 것은 VOC인데 VOC는 보통의 온도 압력에서 기체로 존재하는 수백 가지 화학물질(주로 탄소와 수소로 구성된)의 총칭이다. 주유소에서 흔히 보는 휘발유도 VOC이고 페인트, 인쇄용 잉크도 VOC이다. 건강을 위해 적극 권하는 삼림욕장에서 접하는 피톤치드도 자연 VOC다.
발암물질을 거론할 때 근거로 제시되는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WHO 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의 그룹1(인체 발암성 물질)에는 발암성 물질로 알려진 포름알데히드, 트리클로로에틸렌(TCE), 석면 등도 있지만 원유, 미세먼지, 술, 염장 생선, 태양 복사(빛) 등도 포함돼 있다. 국제암연구소의 발암물질 구분은 대상 물질의 암 발생과 관련한 과학적 근거의 확실성을 평가한 것이지 암 발생 가능성의 크기를 평가한 것이 아니다. 존재 자체로 암이 발생한다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발암성으로 분류된 술을 마시며 발암성으로 분류된 태양 아래에서 산책을 할 수 있으며 자외선이 강한 바닷가에는 어찌 나갈 수 있겠는가.
모든 화학물질이 언제나 안전한 것은 아니다. 화학물질이 없으면 세상도 존재할 수 없지만 과하게 되면 도리어 큰 피해를 일으키게 된다. 어떤 독극물은 아주 소량으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화학물질에 따른 독성 특성, 농도, 노출시간 등이 위해성을 가름하게 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안전하다고 알려진 화학물질, 심지어는 치료용 약물이라고 하더라도 과도하게 섭취하면 역시 큰 피해를 일으키게 된다. 그러니까 절대 안전한 화학물질은 없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언제까지 사망자가 생기고 언론에서 터트리고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한 다음에야 허둥거리며 뒤치다꺼리하듯 화학물질 사태에 대응할 것인가. 화학물질과 관련해 연속으로 벌어진 이번 사태는 유해 화학물질 관리체계를 제대로 점검하고 재정비할 기회다. 국민들을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분명하고 일원화된 관리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평소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의 독성과 사용 경로를 잘 파악하고 문제 발생시 국민에게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아쉬운 것은 화학물질에 대한 건전한 상식과 전문가들의 정확한 정보 전달 없이 전 국민이 공포에 빠진다는 것이다. 학교 교육에서 환경교육이 한층 더 강화돼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