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감성을 인식하는 일본의 인공지능(AI) 로봇 ‘페퍼(Pepper)’가 한국말을 배워 다음달 국내에 상륙한다. 지금까지 스피커에 국한됐던 국내 포털·이동통신 사업자들의 AI 격전지가 다른 다양한 기기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페퍼에는 지금까지 국내 AI 시장에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LG유플러스의 자체 솔루션이 탑재됐다는 점에서 향후 시장 판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28일 LG유플러스는 자사가 자체 개발한 AI플랫폼을 탑재한 로봇 페퍼가 다음 달부터 다양한 분야의 국내 매장에 도입돼 시범운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페퍼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로봇전문기업인 소프트뱅크로보틱스가 개발한 AI 제품이다. 특히 사람의 감정까지 인식할 수 있는 세계 최초 휴머노이드(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모습) 로봇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는 다음 달부터 LG유플러스 매장을 비롯해 우리은행·교보문고·가천대 길병원·롯데백화점·이마트 총 6개사에 우선 적용돼 1년 동안 시범운영 된다. LG유플러스는 이번에 한국어 음성지원을 비롯해 각 매장안내 및 상품·서비스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해 페퍼에 장착시켰다.
페퍼의 상륙이 눈에 띄는 것은 LG유플러스의 자체 개발 솔루션이 탑재됐기 때문이다. 경쟁사인 SK텔레콤과 KT는 각각 ‘누구’와 ‘기가지니’를 출시해 이미 지난해부터 AI 스피커 시장 주도권 잡기에 나섰고, 양대 포털업체인 네이버와 카카오도 올해 ‘클로버’와 ‘카카오 미니’를 공개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가전제조사인 삼성전자 역시 자사의 AI 비서 ‘빅스비’를 연동한 스피커를 내놓겠다고 선언했지만, LG유플러스는 그간 이렇다 할 서비스나 제품을 선보이지 못했었다. 하지만 LG유플러스로서는 AI 디바이스 시장에서 후발주자인만큼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스피커 시장 대신 기업간거래(B2B)를 겨냥한 로봇 시장에 출사표를 내 경쟁에 뛰어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LG유플러스는 조만간 자사의 AI 전략과 관련한 청사진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자리를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LG유플러스 용산사옥에서 신균배(왼쪽부터) 우리은행 디지털 전략부장·김형면 교보문고 점포사업본부장·송대원 LG유플러스 AI디바이스담당·김영보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교수·김명구 롯데백화점 마케팅부문 상무·박창현 이마트 S-LAB 미래기술 팀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사진제공=LG유플러스
송대원 LG유플러스 AI디바이스담당은 “통신사의 인공지능 기술이 페퍼에 적용되는 것은 국내 최초”라며 “다른 사업자들과 달리 로봇을 통해 AI플랫폼을 선보이게 됐다”고 소개했다. 또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을 감안해 용도와 수익모델이 명확한 분야에 우선 적용했으며, 다양한 산업분야를 대표하는 회사들이 참여하는 만큼 앞으로 서비스 활용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페퍼는 인사, 날씨, 지식검색 등 다양한 분야의 대화 및 맞춤형 상품추천 기능이 제공된다. 내달 11일부터 △우리은행 본점영업부·명동금융센터·여의도금융센터 △교보문고 합정점 △가천대 길병원 본관 로비·인공지능 암센터 △롯데백화점 중구 본점 △이마트 스타필드 고양 토이킹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같은 AI 기기 주도권 다툼의 승기는 결국 음성 관련 빅데이터를 많이 확보한 업체가 쥘 전망이다. AI는 기계가 자체 학습하는 머신러닝(mashine learning) 과정에서 지금까지 축적한 빅데이터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ICT 업체들이 AI 관련 응용프로그램개발환경(API)을 외부 개발자에게 개방하고 타 업체와의 제휴에 적극적인 이유는 플랫폼 서비스로서의 확장성 강화와 빅데이터 확보 때문”이라며 “수년 내 이 분야의 강력한 승자가 가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용민기자 minizz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