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인터뷰①]‘분장’ 남연우 감독 “동성애자가 영화를 보고 폭력적이라고 느끼지 않길”

제3자로서 성소수자를 바라보던 인간이 자신의 친동생이 성소수자란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7일 개봉한 영화 ‘분장’은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위선 그리고 이해의 민낯을 그린다.

‘분장’(제작: 이야기秀CUT(이야기수컷)│제공: ㈜콘텐츠판다│배급/마케팅: 무브먼트 .MOVement )은 무명 연극배우 오송준(남연우 분)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 소수자 연극 ‘다크라이프’ 주연배우로 캐스팅이 된 이후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는 모습을 담았다.

작품은 극중극 연극 ‘다크라이프’ 주인공에 도전하는 송준(남연우 분)의 이야기와 친동생 송혁(안성민 분)과 송준의 오랜친구 우재(한명수 분)와 연관된 현실 속 이야기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여기에 송준이 이해한다고 믿는 새로운 친구 트랜스 젠더 이나(홍정호 분), ‘다크라이프’ 조연출 소민(양조아 분)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감을 발휘한다.

영화 ‘분장’ 감독 겸 배우 남연우 /사진=지수진 기자
영화에서 송준이 보여주는 이중성은 기대 이상의 흥미로운 질문과 성찰을 유발한다. 단순히 성소수자 문제가 남의 얘기로 들렸을 때와 내 가족의 얘기로 다가올 땐 분명 다른 온도감으로 다가온다. 남연우 작가 겸 감독은 그 경계를 영리하게 짚어냈다.

“동성애자가 이 영화를 보고 폭력적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피하고 싶었어요. 앞에서는 ‘나는 이해한다’라고 해 놓고 뒤에선 상처 되는 말을 하는 것, 그게 바로 폭력적인 거잖아요. 저 역시 그동안 동성애나 성소수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영화를 준비하며 실제 성소수자를 인터뷰하고 만나고 그들의 시각을 보다 제대로 담아내고 싶었어요.”

“성소수자 친구에게 시나리오를 주고 혹시나 ‘폭력적인 내용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있느냐’는 자문도 많이 구했어요. 첫 번째 그 분들이 봤을 때 ‘우리를 왜 이렇게 만들었지?’란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했어요. 폭력적이지 않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 그대로 담아내면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성소수자 친구에게 먼저 시나리오를 준 지점은 그 이유였어요. 서로 토론하면서 ‘이 시나리오는 괜찮은 것 같다’는 의견도 받았어요.”

영화는 극중극을 통해 배우의 진정성, 성 소수자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수 많은 이들의 진정성을 교차시키며 우리 모두의 본성을 돌아보게 한다.

“저희 작품을 통해 ‘이게 잘못됐고 이건 잘 됐어’ 아님 ‘이해해야 된다’는 그런 말을 하고자 한 게 아니잖아요. ‘맞고 틀리다’의 문제도 아니고 ‘인정해야 한다’는 문제도 아니라고 봤어요. 같은 사람 인건데...시나리오를 쓰면서 성소수자들의 이야기 중심으로 들어가고 싶었고, 그게 제일 고민을 많이 하게 했어요.”

그가 제작·각본·연출·주연한 ‘분장’은 제 2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에 초청받아 호평 받은 데 이어 2016 서울프라이드영화제 핑크머니상(관객상)을 수상했다. 남연우 감독은 ‘가시꽃’(2012)으로 제1회 들꽃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다. ‘그 밤의 술맛’(2014)에서 감독 겸 배우로 나선 데 이어 ‘분장’을 통해 첫 장편을 선보이게 됐다.

감독이 주역까지 맡은 이번 작품을 보면서, ‘왜 감독이 주역 배우에 대한 욕심(?)까지 냈을까?’란 궁금증이 생겼다. 남 배우는 “내가 이 영화로 무얼 하고 싶은지 천천히 들여다봤다”는 답을 내 놓았다.


“한 제작사 PD님이 제 시나리오에 관심을 보이셨어요. 제 입장에선 찍을 수만 있으면 너무 감사하기 때문에 올해 안에는 찍고 싶다고 말 했어요. 그런데 제가 감독 겸 주연으로 나서게 되면 투자를 받기 힘들다는 말이 나왔어요. 맞는 말이죠. 아무것도 증명 안 된 남연우란 이름을 걸고 어느 누가 100만원이라도 투자를 해주겠어요?

그래서 주연 배우를 인지도 있는 배우로 캐스팅 하면 투자가 쉬워진다는 말까지 나왔어요. 오승준 역을 다른 배우에게 줄 수 있냐? 는 질문 앞에서 제작비를 끌어오는 일보단 영화 자체에 대한 애착이 더 컸어요. 제가 송준 역을 맡으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이랑 호흡을 하는 게 맞다는 결론이 나온거죠.“

남연우는 연출하면서 가장 행복한 이유 중 하나는 “좋아하는 배우와 같이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 극중 연극 연출가는 대학 한예종 재학시절 은사인 최용진 교수, 조연출은 한예종 연극원 동기인 양조아 이수광이다.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선배로 등장한 허정도는 실제 한예종 선배이다. 트랜스젠더 역 뮤지컬배우 홍정호는 오랜 친구이다. 동생 역 안성민은 연기학원 강사 시절 첫 제자다.

“내게 연출은 연기의 연장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훌륭한 배우들을 세팅하고, 함께 호흡하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다. 제가 너무나 존경하는 최용진 교수님부터 노력의 신 홍종호 등 모든 배우들이 다 한마음으로 작업했어요. 양조아는 연극계에선 신이라도 불리고 있어요. 연극을 꿈꾸는 배우들이라면 꼭 한번 작업하고 싶은 배우죠. 티켓 오픈 하자마다 매진되는 극단이 별로 없는데 양조아가 속한 양손 프로젝트는 바로 매진되는 극단이잖아요. 실제로도 너무 잘 하죠. 모든 스태프가 현장에 오는 게 기뻤으면 좋겠어요. 그런 현장을 만들고 싶어요. ”

영화 ‘분장’ 감독 겸 배우 남연우 /사진=지수진 기자
작법 및 연출법을 따로 배우기 보단 ‘카메라 연기’란 수업을 통해 많은 걸 배웠다고 밝힌 남연우는 대학시절 강혜원 감독님의 수업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수업을 듣던 중 다시 보게 된 영화는 ‘8월의 크리스마스’. 그는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장면의 이유를 찾게 됐다”며 눈빛을 빛냈다. 그렇기에 그는 남연우가 감독으로서 잘 해야 하는 건 “첫 번째가 ’연기 연출‘ 두 번째가 콘티이다”고 했다. 이 두 지점이 완성이 된 뒤에는 “현장에 있는 많은 이들이 즐거워야 하는 것”이었다.

“‘카메라 연기’ 수업을 들으면서 연출적으로 흥미를 갖게 됐어요. ‘카메라를 어떻게 배치시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가 된다. 그래서 콘티가 중요하다’ 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 카메라 위치가 재미있어요. 인물의 심리에 따라 카메라 위치를 밖에 배치하기도 안에 배치하기도 하는데, 다 이유 있는 위치 설정이었어요. 카메라도 배우와 같이 연기를 한다는 게 제일 흥미로웠어요. ‘카메라’ 이 하나의 선택이 너무 중요한 거였어요. 물론 전 아직까지 감독에 대한 욕심보다는 배우에 대한 열정이 더 커요.”

남연우의 첫 인상은 ‘차갑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조금만 이야기 해보면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가득한 성격이란 걸 알 수 있다. 아직 그는 소속사 없이 활동 중이다. 이미 수차례 기획사의 러브콜이 있었지만 “아직 생각이 같은 회사를 만나지 못해 거절했다”고 했다.

“좋은 회사, 큰 회사를 떠나서 배우인 저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거잖아요. 회사와 뜻이 다르면 괴롭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기획사도 5년 이상 가족처럼 지내야 하는데 단순히 인지도를 쌓기 위해 들어가는 건 아니라고 봤어요. 물론 회사에 들어가면 돈도 벌고 그렇겠지만 그게 저의 행복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기획사 미팅할 때마다 이런 배우가 되고 싶고, 이러 이러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디테일하게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고 제 플랜을 말해요. 그러면 절 보고 상품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저 역시 생각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서로 선택을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천천히 오래가고 싶은 배우 겸 감독 남연우에게 ‘분장’ 그 어떤 작품보다 소중하고 또 애틋하다.

“‘분장’은 제 자식이라고 말 할 수 있어요. 깨물면 아프죠. 장단점이 있겠지만 장점이 많이 보여요. 부모로서 자식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어쨌든 간에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어요.”

한편, 남연우, 안성민, 홍정호, 한명수, 양조아 등이 출연하는 영화 ‘분장’은 열악한 상영 조건에도 불구하고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개봉일인 27일에 대비 28일 5배에 가까운 관객수를 기록하며 흥행 역주행 스타트를 끊었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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