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식사합니다’ …현대인 집밥 된 편의점 도시락



# 서울에서 지하철 기관사로 일하는 김지훈(31·가명) 씨는 자타가 인정하는 ‘편도족’으로 통한다. 직장에서는 물론 집에서도 편의점 도시락을 애용하기 때문. 직업 특성상 점심시간이 짧고 혼자 밥을 먹는 경우가 많은 그는 대부분의 식사를 편의점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김 씨는 “집에서 혼자 밥을 해 먹으면 남는 재료도 많고 설거지도 해야 해 피곤하다”며 “편의점 도시락은 저렴하고 편하게 1식 6찬을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 초등학교 5학년 정은별(12·가명)양은 학교가 끝나는 오후 3시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편의점으로 향한다. 3시 반에 오는 학원 버스를 타기 전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서다. 보통은 삼각김밥이나 빵을 먹고 허기진 날에는 도시락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기도 한다. 정양은 “학원이 끝나는 저녁 시간이면 주변 편의점에서 중고등학생 언니·오빠들이 줄을 서서 컵라면이나 도시락을 먹는다”고 말했다.

# 워킹맘 박희진(42·가명) 씨는 바쁜 시간을 쪼개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퇴근길 교통체증을 뚫고 학교에 도착하면 언제나 수업시간이 코앞이어서 식사는 항상 편의점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그녀는 “처음에는 어쩔 수 없어서 편의점 도시락을 선택했는데 지금은 도시락에 대한 편견이 싹 사라졌다”며 “식당에서 혼자 먹는 것보다 덜 외롭고 편의점에서 밥 먹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 ‘열심히 살고 있다’는 동지 의식까지 느낀다”고 말했다.




전국 방방곡곡의 편의점 3만 곳에서는 날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주린 배를 채우고 간다. 취업준비생들은 저렴한 가격 때문에 편의점 도시락을 찾고 바쁜 직장인들은 시간을 아끼려고 편의점에서 밥을 먹는다. 1인 가구들은 혼자 요리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 대신 편의점 도시락의 간편함을 선택한다. 요즘에는 ‘맛있어서’ 편의점 도시락을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주머니가 가벼운 취업준비생이나 형편이 어려운 결식아동들은 편의점에서 자주 끼니를 때운다.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취업준비생 1,14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취준생들이 가장 자주 사 먹는 식사메뉴는 편의점 도시락 및 삼각김밥(23.7%)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자치단체가 결식아동에게 지급하는 급식카드도 약 40%가 편의점에서 사용된다는 조사가 있다.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이 4,000원 정도라 웬만한 일반 식당에서는 밥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편의점 도시락이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하는 ‘눈물 젖은 빵’인 셈이다.

편의점 도시락을 찾는 이유가 돈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들어 편의점 도시락을 견인하고 있는 세력은 1인 가구다. 20~30대 위주였던 편의점 도시락 고객의 나이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편의점 CU에 따르면 2014년 도시락 연령별 구매 비중은 20대와 30대가 63%에 달했고 40대와 50대 이상은 27%였지만 현재 20~30대가 58%로 낮아진 반면 40대와 50대 이상이 34%로 늘어났다.

편의점 메뉴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취향과 입맛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샐러드 도시락, 곤약 비빔밥 도시락, 닭가슴살 도시락 등 건강 도시락들도 속속 출시되는 추세다.

또 고객이 원하는 반찬을 골라 도시락을 만들 수 있는 ‘맞춤형 도시락’은 물론 편의점에서 직접 지은 따뜻한 밥을 제공하는 ‘밥 짓는 편의점’도 등장했다.

GS25 관계자는 “가격이 1만 원이 넘는 장어 덮밥 도시락도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보면 이제는 가격을 떠나 편의점 도시락을 즐기는 마니아층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