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공감’ 퇴계 선생 생가 ‘노송정’ 종부 정숙씨, 시어머니 되다



7일 방송되는 KBS1 ‘다큐 공감’에서는 ‘노송정별곡’ 편이 전파를 탄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퇴계 선생의 생가로 유명한 노송정에서 칠순의 정숙씨를 만났다. 3년 전, 친정 어머니와 종부를 대물림한 자신의 이야기를 여인들의 노래-내방가사로 표현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정숙씨, 일년 내내‘봉제사접빈객’-조상의 제사를 모시고 정성을 다해 손님을 대접해야 하는 것이 종부의 일생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세상만사 마음에 달린 것. 번거로운 게 아니라 이 또한 사람 사는 재미라 여기면, 일도 기쁨이 된다. 오늘도 정숙씨는 노송정 솟을대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반긴다. 이 시대 앞만 보고 사느라 세상살이가 버거운 이들에게, 또 욕심 탓에 만족을 모르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인생 선배의 진솔한 이야기. 힘든 만큼 지혜 또한 깊어졌다고 말하는 정숙씨의 농익은 삶의 지혜를 만난다.

▲ 작가를 꿈꾸던 소녀, 600년 종가에 깃들다

우리네 삶의 전통과 가치를 지키는 사람들이 사는 경북 안동의 노송정 종부, 최정숙씨. 어릴 적, 문학소녀로 작가를 꿈꾸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공무원으로 열심히 살았다. 종갓집 딸로 태어나 종부인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정숙씨, 하지만 어머니처럼 힘들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딸은 결국 종부의 길을 걷고 있다. 친정아버지의 간곡한 권유에 못 이겨 스물 다섯에 노송정의 맏며느리가 됐고 그렇게 45년이 흘렀다.

“‘네가 해낼 수 있는 만큼 네 어깨에 짐이 온지’라는 친정아버지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어차피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더라고 .”

- 최정숙, 노송정 종부

“마음이 보여요 마음이 보이는 게 우리들 옛날 선비정신을 종부들이 마음에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 이영자, 국제퇴계학회

▲ 종부, 큰살림을 사는 사람

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정숙씨는 장독대를 정갈하게 닦고 놋그릇을 윤이나게 닦느라 하루 해가 짧다.8년전 대학교수였던 남편이 정년 퇴직하고 노송정으로 들어온 이후 부부의 일상이다. 유월 유두에 유난히 손이 많이 가는 국수를 땀흘려가며 만들어 친척들에게 대접하고밤이면 언제 찾아올 지도 모를 손님을 위해 30여 가지가 넘는 전통과자를 준비한다. 일흔의 나이에도 기꺼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은 편하고 쉽게 사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다.노송정을 찾는 이들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종가의 넉넉한 마음을 선물하고 싶어서다.

▲ 노송정 며느리, 시어머니가 되다


모처럼 외출을 서두르는 정숙씨, 천 평이 넘는 노송정의 큰살림을 꾸리지만 지금도 시어머니가 물려준 허름한 화장대를 쓸 정도로 삶이 소박하다. 정숙씨가 바쁜 시간을 쪼개 찾아간 곳은 내방가사 여성공부방, 어릴 적 문학소녀였던 재능을 십분발휘했다. 친정어머니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종부소회가’로 수상의 영광도 누렸다. 며느리를 맞을 때도 정숙씨의 정성 가득한 손편지는 빛났다.

“아가야 윤정아. 너는 나와 어떤 의미로 보면 동창생이라 할 수도 있지 않겠냐? 우리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너답고 나답게 태산같은 자긍심을 갖자구나.”

- 며느리에게 보낸 편지

“제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받아본 가장 감동적인 편지였어요. 누가 시집오면서 시어머니께 그런 편지를 받아볼까요,”

- 박윤정, 며느리

▲ 노송정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한 달에 두 번 노송정을 찾는 큰아들 가족. 손자들이 조상을 기리는 사당에서 자신의 뿌리를 배우는 사이, 정숙씨는 며느리에게 종부 수업을 시작한다. 종손이라 쉽게 장가를 못 갈 줄 알았던 아들을 구해준 기특한 며느리이니만큼 애정도 남다르다.오늘은 명태 보푸라기와 새우 완자, 종가의 손님은 남녀노소 구분이 없지만 치아가 약한 어른들을 위한 삶의 지혜가 담긴 음식이다.

그리고 서울의 한 호텔에서 전국의 열두 종가음식을 선보이는 자리가 펼쳐졌다. 종부들이‘전통음식 셰프’가 돼 가문의 전통이 담긴 음식으로 세상과 소통에 나선 것이다. 정숙씨 또한 종가의 전통과 삶의 지혜, 그리고 자부심이 담긴 음식을 들고 노송정 알리기에 나섰다.

“임진왜란 때도 한국전쟁 때고 손실 하나 없었고 한 번도 노송정 대문을 닫은 적이 없어요. 이렇게 천년쯤 갔으면 좋겠어요.”

- 최정숙, 노송정 종부

집은 사람의 온기가 있어야 진정 살아있는 것이고 노송정의 정신을 지키는 길이다. 정숙씨는 내일도 노송정 솟을대문을 활짝 열고 사람들을 맞을 것이다.

[사진=KBS1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