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통화스와프



2008년 10월30일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은 극적이었다. 미국이 비기축통화국과 협정을 맺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발표 시점도 한국의 시장 개장 직전에 맞췄다. 효과 극대화를 노린 우리 측의 입장을 미국이 배려한 것이다. 스와프 규모는 300억 달러. 한 달 치 수입액 결제대금에 그치는 수준임에도 달러 우산의 위력은 즉각적이고 강력했다. 달러당 1,500원 돌파를 눈앞에 뒀던 원화 환율은 하루 만에 177원이 내렸다. 달러 기근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며 10년 전 외환위기의 악몽을 떨쳐버리는 순간이었다.


한미 통화스와프의 공적을 두고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티격태격했지만 결과적으로 합동 작전의 개가였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처음에 미온적이었다. 이머징 통화와의 교환은 전례가 없어서다. 연준을 설득한 논리는 달러 패권의 위기론. 환율 방어를 위해서는 미 국채를 팔아 달러 현찰을 쥐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달러의 위기가 증폭한다는 논리는 먹혀들었다. 외환 당국은 미 국채를 대량 매도하는 무력행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월가 출신으로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의 후예인 ‘루비니스트(루빈 사단)’ 인맥을 적절히 활용한 전략도 주효했다.

통화스와프는 보유 외환과 더불어 양대 외환(外患) 방파제로 통한다. 달러를 협약 종료 시점까지 언제든지 빼 쓸 수 있다. 국가 차원의 마이너스 통장인 셈이다. 정부는 외환위기를 겪고 그 필요성을 절감했다. 첫 대상은 일본. 2001년 20억 달러로 출발해 700억 달러까지 확대했다.

일종의 경제 동맹인 통화스와프는 국제 정치 지형의 압축판이기도 하다. 미국·일본과 맺은 협약을 지렛대 삼아 중국과 첫 통화스와프를 맺기도 했다. 가깝고도 먼 일본과의 협약은 외교 관계에 따라 부침을 겪었다. 일본은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치졸하게도 통화스와프 연장과 연계했다. “연장 요청을 하면 검토할 수 있다”며 먼저 고개를 숙이라는 굴욕적 주문을 정부가 수용할 리 만무했다. 10일로 한중 통화스와프 만기가 도래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조치가 장기화하는 마당이라 지속 여부가 녹록하지 않다. 3,900억 달러의 보유 외환이 든든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층 방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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