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한 직원이 경기도 화성사업장 내 반도체 생산라인 클린룸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 반도체 경기는 슈퍼 호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우리 경제의 반도체 의존도 심화되고 있다. /서울경제DB
문제는 그런 양적 지표의 개선에도 우리 기업의 체질개선을 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의 반도체 의존증은 심화되고 있고 20년간 주력산업과 수출품목 리스트는 거의 변화가 없다. 그렇게 수출 다변화를 외쳤지만 중국 등 특정 국가에 대한 수출 의존은 중증이다. ‘건전성’ 허들을 넘고 나니 ‘성장동력’이라는 더 큰 허들 앞에서 주저앉은 형국이다. 김도훈 경희대 특임교수(전 산업연구원장)는 “과거 중후 장대형 산업의 성공에 안주한 결과가 제조업 붕괴로 나타나고 있다”며 “신산업이 꽃필 수 있는 규제 완화, 연구개발(R&D) 투자 등이 이뤄져야 기업 체질이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건전성은 개선돼도 요원한 체질개선=20년간 기업의 변화는 지표로 확인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1997년 396.5%에서 올 2·4분기 66.7%로, 같은 기간 차입금 의존도 역시 54.22%에서 20.0%로 나아졌다. 기업의 빚 갚는 능력은 몰라볼 정도로 개선된 셈이다.
하지만 성장성과 수익성 지표는 정체되거나 나빠졌다. 매출액 증가율은 1997년 11.02%에서 2007년 9.28%, 2017년 2·4분기 8.4%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매출액 영업이익률의 경우 8.25%→5.88%→8.4%로 도돌이표에 가깝다. 한때 ‘엘도라도’로까지 여겨졌던 중국에 대한 수출 쏠림현상은 더 심각해졌다. 외환위기 당시만 해도 대중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97%로 3위였지만 지금은 23.4%로 부동의 1위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여파로 중국 시장이 망가지자 기업 생존이 위태로울 정도다. 치밀한 전략을 갖고 중국에 접근하기보다 거대시장에 대한 환상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들다 보니 소비재 업체들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한 대기업 임원은 “기업들이 돈을 쌓아놓고도 씨앗을 뿌리지 않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안주하는 기업도 문제지만 투자 여건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현실도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20년간 주력산업·품목 변화 찾기 어려워=우리 기업이 늙어가고 있는 게 문제다. 보신주의가 만연하고 역동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세계 시장 1위 품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수출액 기준으로 국내 기업이 1위인 품목은 총 68개(2015년 기준). 그런데 우려되는 것은 지난 10~20년간 이 리스트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없고 중국·일본 등 경쟁국과 점유율 측면에서 5% 미만 내의 경합관계인 품목도 40개나 된다는 점이다. 시장에서 새롭게 뜨는 ‘게임 체인저’는 없고 후발국에 따라잡히려는 제품만 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도 부동산 부양(박근혜 정권), 분배 위주의 소득주도성장(문재인 정권) 등 단기적이고 인위적 정책에 치중해왔다. 그러는 사이 산업 구조조정은 하염없이 지체돼 조선·철강에 이어 자동차도 이들 업종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소리 없이 찾아오는 위기’…안이한 인식 버려야=외환위기와 이번 위기는 모두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 ‘기업·정부의 펀더멘털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안주 의식 팽배→구조조정 미흡→산업 활기 소진→경제침체’라는 프로세스가 되풀이되고 있다. 지금도 기업들의 체감과 정부의 현실 인식 사이에 간극이 작지 않다. 그런 결과가 각종 규제혁파에 미온적이고 기업에 요구만 하는 정부의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들도 더 개방적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주력업종의 부진은 ‘파이 지키기’에 연연해 변화의 흐름을 놓친 측면이 있다. 김 특임교수는 “우리만의 강점을 살려 세계적 혁신기업과 연합군을 형성하는 데 주저해선 안 된다”며 “정부도 규제개혁에 반발하는 이해관계자의 조정에 적극 나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훈·김우보기자 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