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A광고회사는 “영업허가를 얻어주겠다”는 중국 한 지방정부의 계약상 약속을 믿고 현지에 진출했다. 하지만 허가는 상급 정부에 막혀 불발됐고 A사는 막대한 손실을 봤다. A사는 헛된 약속을 한 현지 정부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걸었지만 중국 법원은 “계약으로 정부에 의무를 강요할 수 없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국내의 한 변호사는 “중국 진출 기업 사이에는 지방정부 상대 소송은 가급적 하지 말라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지방정부와의 분쟁은 현지에서 관청에 로비하는 이른바 ‘대관대행사’를 통해 해결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로 한중 관계가 얼어붙은 사이 현지에서 A사처럼 법률 분쟁을 벌이는 기업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드 문제로 중국 정부가 한국 기업에 대한 규제 강도를 높이면서 법률 분쟁도 확산할 것으로 본다. 중국 내 소송을 오랫동안 다뤄온 전우정 법무법인 정률 변호사는 “한국보다 제한된 독립을 누리는 현지 사법부와 지방분권의 전통, 생소한 법률 탓에 기업들이 소송에서 이기는 게 매우 어렵다”며 “중국 사법체계의 특징을 꼼꼼히 검토하는 것만이 그나마 손실을 낮추는 길”이라고 말했다.
중국 내 소송이 까다로운 이유로 전문가들이 꼽는 것은 판결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사법부의 독립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다. 중국 법관의 인사권은 각 법원이 속한 지방의 입법기관인 인민대표대회가 쥐고 있는데다 법관의 근무지 이동도 드물다. 각 법원 예산도 해당 지방 인민정부가 좌우한다. 전 변호사는 “여기에 각급 법원장은 법원 내 심판위원회를 통해 개별 법관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쟁점이 많은 재판은 1심 재판부가 상급심 법원에 문의해 판결하기도 한다”면서 “법원이 관할구역 내 정부나 자국 기업에 유리한 재판을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낯선 법률 조항이나 사법체계도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요인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은 3심제를 원칙으로 해 대법원까지 상고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2심제가 원칙이며 최고법원인 최고인민법원에 상소할 수 있는 사건이 매우 제한적이다. 게다가 현재 한국과 중국 사이에 상대국 판결에 대한 승인·집행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지 않아 국내 판결을 중국 법원에서 승인해줄 가능성도 극히 낮다.
한국 금융기관들이 중국 법 조항을 숙지하지 못해 큰 손실을 본 일도 있다. 신한·우리·국민은행이 지난 2007년 KDB산업은행 주선으로 STX조선해양이 중국 다롄에 조선소(STX다롄)를 세울 때 4억달러를 함께 대출했다가 2015년 STX다롄 청산 과정에서 대출금을 일절 회수하지 못한 사례다. 중국에서 담보권을 설정하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경외담보등기’ 절차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전 변호사는 “한중 간 국제분쟁을 공평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중재”라며 “중요한 사업을 진행하면서 대한상사중재원, 홍콩국제중재센터(HKIAC), 중국국제무역중재위원회(CIETAC) 같은 중재기관을 계약에 규정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법원보다 중재기관으로 달려가는 것이 낫다”고 강조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