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 프로그램은 일종의 ‘샘플’과도 같다. 정규편성에 앞서서 1~2편을 미리 내보내 후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향후 고정적으로 방송해도 좋을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돼 주기 때문이다. KBS는 애석하게도 수많았던 예능프로그램 중에서 정규로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가능성은 극히 적으며, SBS의 경우 일찌감치 정규편성이 확정된 ‘내 방 안내서’를 제외하고, 기타 프로그램의 정규편성은 지켜봐야 하며, 실험정신이 가득했던 tvN의 경우 준비했던 프로그램 모두 기대 이상의 평가를 이끌어 내며 ‘정규행’의 가능성을 높였다.
사진=KBS
◇ 우려먹기 MBC·어디서 본 듯한 KBS·체면치레 SBS일단 공영방송에 파업 여파로 인해 다른 연휴에 비해 양적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프로그램의 부족했다. MBC의 경우 기존에 화제가 됐던 프로그램을 재편집해서 다시 보여주는 수준에 그칠 뿐이었다. ‘나 혼자 산다’ ‘복면가왕’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 지상파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실험적인 포맷을 도입한 파일럿 프로그램을 주로 선보이면서 새로운 예능트렌드를 제시해왔던 MBC였기에, 파업으로 인한 파일럿 예능 제작무산은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MBC와 함께 파업 중에 있는 KBS는 무려 8개의 파일럿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했지만, 돌아온 것은 혹평뿐이었다. 물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며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 ‘1%의 우정’이나 싱어송라이터의 음반 작업기를 들여다보는 ‘건반 위의 하이에나’ 등과 같이 호평을 받은 작품도 있었지만 ‘100인의 선택’ ‘혼자 왔어요-썸 여행’(이하 ‘혼자 왔어요’) ‘줄을 서시오’ 등은 ‘베끼기’ 논란을 일으키며 비난을 받았다.
판정단들이 맛집을 돌아다니며 맛을 직접 검증한다는 ‘100인의 선택’의 경우 맛집을 돌아다니며 맛을 검증하는 ‘먹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심지어 MC마저 ‘님과 함께2-최고의 사랑’에서 먹깨비 부부로 활약했던 유민상과 이수지였던 만큼 더욱 더 ‘본 듯한’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원색적인 비난만이 이어지면서 보기 불편했다는 지적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도 했었다.
‘혼자 왔어요’ ‘줄을 서시오’의 경우 ‘베끼기 논란’에 휘말렸던 파일럿 프로그램이다. ‘혼자 왔어요’는 JTBC 예능프로그램인 ‘밤도깨비’와 ‘혼자 왔어요’는 채널A ‘하트시그널’과 포맷이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혼자 왔어요’의 경우 여행을 다녀온 출연진이 여행기를 다시 살펴보며 각자가 여행지에서 ‘느낀 입장 차이’를 이야기하는 여행 관찰 프로그램으로, 신선함을 줄 수 있는 소재였음에도 출연진들 사이 러브라인 기류만을 강조하면서 식상함으로 그쳤다. 줄서는 장소를 찾아가 직접 줄을 서며 ‘저기는 뭐길래 이렇게 줄을 많이 서지’라는 의문을 해소하고 줄서기의 재미를 전해준다는 ‘줄을 서시오’의 경우 ‘따라하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나치게 ‘밤도깨비’와 유사했다.
사진=‘하룻밤만 재워줘’ 스틸컷
그래도 앞선 프로그램들은 문제적 예능 ‘하룻밤만 재워줘’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처음 본 외국인에게 보자마자 숙박을 부탁을 하는 콘셉트로 방송 전부터 ‘국가적 망신’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하룻밤만 재워줘’는 방송직후 ‘논란의 중심’에 올랐다. 여행을 떠나는 나라의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회화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낯선 이에게 무조건 ‘재워달라’고 말을 하는 것은 구걸과 가까운 ‘민폐’였다는 것이었다. 왜 부끄러움은 시청자들의 몫이냐는 지적도 심심치 않게 이어졌다. 여기에 JTBC 예능프로그램 ‘한끼줍쇼’과 비슷한 설정과 더불어, 사전 섭외 의혹까지 이어졌다. 더 큰 문제는 논란을 떠나 이상민과 김종민이 이탈리아 현지에서 고생을 하는 모습부터,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 숙소에서 나오는 대화나 그림들이 지나치게 예상 가능했다는 점이었다. 결국 K팝, 한식에 벗어나지 못한 진부함만을 가득 남겼다. 그나마 SBS가 지상파의 체면치레는 할 수 있었다. 스타가 직접 가이드에 나서는 ‘트래블 메이커’와 스타들이 직접 상품을 경험하고 리뷰를 하는 ‘박스 라이프’ 박나래, 손연재, 혜민스님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해외 셀럽과 방을 바꿔 5일간 생활하는 ‘내 방 안내서’ 등 추석을 맞이해 새롭게 내놓은 프로그램 대부분이 기본 이상의 호평을 이끌어 내는 것에 성공했다. 스타 가족들의 일상을 다루는 관찰예능이 기승을 부린 가운데 여행 가이드과 리뷰, 현지에서 살아보기 등의 색다른 소재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다소 산만한 지점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완성도도 높았다. 다만 여전히 ‘관찰예능’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과 낮지도 높지도 않은 4%대에 머문 시청률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 실험과 도전에 나선 tvN, ‘파일럿’으로 활짝 웃다
지상파에서 시도하지 못한 참신한 도전은 tvN이 이어나갔다. tvN은 추석을 맞이해 ‘골목대장’ ‘20세기 소년 탐구생활’ ‘김무명을 찾아라’ 등 총 세 편의 파일럿 예능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 중 최근 예능계 트랜드로 꼽히는 ‘관찰예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진=tvN
출연진이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나 추억의 장소에서 다양한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담은 ‘골목대장’은 양세형, 양세찬, 김신영, 장도연, 이용진, 이진호, 황제성 등 개그맨으로만 구성된 라인업으로 눈길을 끌었다. 개그맨들이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골목대장’이 보여준 라인업은 ‘B급 코드’의 재미를 전하면서 시청자들을 웃게 만들었다. 김희철, 문세윤 등 게스트 활용 또한 나쁘지 않았다. 다만 출연진들이 적지 않다보니 그에 따라오는 ‘어수선함’은 다소 정돈될 필요가 있어 보였다. 한 가지 탐구 주제를 정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포맷의 ‘20세기 소년 탐구생활’의 ‘알쓸신잡’과 또 다른 인문학 예능의 또 다른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다는 호평 속 방송을 마무리 했다. 1회는 ‘퇴사’ 2회는 ‘마시다’를 주제로 했던 ‘20세기 소년 탐구생활’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쏟아져 나옴으로서 유익하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세 프로그램 중에서도 재미와 화제성, 감동까지 모두 잡은 작품은 ‘김무명을 찾아라’였다. 무명 배우를 조명한다는 취지로 호평을 받은 ‘김무명을 찾아라’는 인기 스타가 아끼는 무명 배우들에게 방송 출연의 기회를 주기 위해 ‘추리 설계자’로 나서고, ‘연예인 추리단’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 ‘김무명’을 찾아내는 과정을 다룬 프로그램이다. ‘김무명’이 누구인지 찾아내는 재미와 더불어,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감동을 전해주는데 성공했다.
/서경스타 금빛나기자 sestar@sedaily.com